벌써 삼년의 시간이 흘렀지만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 작품이 있다. 바로 '뿌리깊은나무'다. 어제 종영한 정도전과 뿌리깊은나무는 시리즈연작이 아니건만 둘 사이의 교집합 격인 정도전이라는 인물은 삼년의 시공을 격하고 또다시 우리에게 평생 잊을 수 없을 만큼의 깊은 울림을 안겨주었다.

우리나라 역사속 국가들은 유럽이나 중국에 비해 왕조가 오래 지속되었다. 이글에서 굳이 왜 그랬는지 따져 살펴 이야기 하자는 의도는 아니다. 다만, 중요한 몇몇 중요한 분기점에서 만큼은 동서양이 대동소이하니 기묘하다는 생각을 할 뿐이다.

우리나라 학생들이 중고등학교 때 셰계사 시간에 가장 많이 접하게 되는 나라는 바로 중국, 영국, 프랑스, 그리스라고 할 수 있는데, 그 이유는 문명의 발상이니 뭐니 하는 가깝게 여겨지지 않는 머나먼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가 살고 있는 현대에 가장 밀접한 영향을 주고 있는 민주주의의 시작과 성장을 함께 한 나라들이기 때문이다. 물론 중국은 동양문화의 중심이었기 때문이고.

그런데 돌이켜 보니 교과서로만 배울 때는 와닿지 않았떤 민주주의 발달 과정이 세월이 지나면서 중요한 교훈을 얻는 바탕이 되어 주는 기특한 역할을 하고 있었다. 무슨 이야기냐면 드라마 '정도전'이나 영화 '레미제라블'과 같은 명작을 접할 때 겉으로 보이는 이상의 교훈을 깊이 느끼는데 역사공부가 도움이 되어 주었다는 의미다. '레미제라블'속의 장발장은 단지 빵을 훔치고 감옥에 갇혀 고생하며 산 인물일 뿐 아니라 당시의 시대상을 반영하는 상징적인 인물인데, 프랑스 혁명에 대해 조금이라도 배경지식이 있다면 작품을 보는 재미가 배가 되어 줄 뿐 아니라 마음속에 느끼는 감동역시 두배 세배로 늘어났을 것이다.

정도전의 이야기는 우리나라 사극이나 일반 드라마가 나아갈 바를 보여주고 있다. 왕이나 재벌의 이야기를 중점적으로 다루는 드라마라면 일시지간 대리만족의 욕구를 채워줄 수 있겠지만, 보고 나면 얻는게 하나도 없는 허망한 이애기와 다름 없다. 그래서 특별한 차별점이 없는 경우라면 재벌이 등장하는 드라마는 최근 시청률이 곤두박질 치다 못해 존재감마저 없어져 가고 있다. 물론 개중 '상속자들'과 같은 차별점을 만들어 내는 케이스가 없는건 아니지만 같은 작가의 다른 작품에 비해 시청률은 좋지 못했다. 이유는 여러가지지만 그 중 두가지만 언급하자면, 우리나라 국민들이 드라마를 보는 경로가 전파로 수신하는 지상파 뿐 아니라 여러 경로로 세분화-다양화 되었고, 그러면서 드라마란 장르 자체에 대한 관심도가 낮아진 부분이 더해지고 마니 히트작의 시청률이 과거라면 망작이라고 할 만한 15%를 기준으로, 이 선을 넘어가면 흥행작이라 불리게 되었다.

 분야는 조금 다르지만 어느덧 우리나라 국민들은 경제적으로 안정되기 시작한 이후부터는 '권투'를 잘 보려 하지 않게 되었는데, 이렇듯 시대의 흐름은 억지로 막을 수 있는 부분이 아니다. 국민의 의식이 변화해 가며 그렇게 흘러가기 때문이다.

요는 '정도전'이 현재 2014년을 살아가는 우리나라 국민들에게 와닿는 중요한 이야기를 해주는 드라마였다는 이야기다.

 

드라마 속 이방원의 말대로 오백년에 이르는 긴 세월 동안 역적, 역신으로 취급 받던 정도전은 역성혁명을 통해 민본의 뜻을 이루고자 하는 대 정치가로 우리에게 돌아왔다. 우리나라의 사회구성원들의 민주주의와 역사에 대한 배움의 수준이 '정도전'과 같은 드라마를 보며 얻는게 있는 그런 단계까지 왔기에 이런 작품이 방송을 타고 좋은 반응을 얻을 수 있었을 것이다.

요즘 유행하는 말로 빗대면 우연아닌 우연인듯 우연같은 시기에 '정도전'은 방영되었고, 감동을 안겨주었다. 다시 말해 우연아닌 필연처럼 우리 국민에게 이 의미 깊은 드라마 '정도전'은 찾아왔던 것이다.

정통사극을 집필하는 작가나 제작 방영하는 방송사나 이른 흐름을 정확히 캐치하지 못하고서는 흥행을 할 수 없다. 운좋게 흥행을 한다 해도 안티 없는 흥행이 아니라 비난을 자양분 삼아 노이즈마케팅을 거듭하고, 나아가 온갖 막장코드로 중무장하여 시청자를 자극하며 얻어낸 영광스럽지 못한 결과물일 것이다.

 물론 아무리 잘만든 정통사극이라 할지라도 작가에 의해 주인공의 일대기가 미화되는 부분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본래 문학작품이나 이런 정통사극의 의미는 우리 국민들이 시청하며 그 가운데 의미를 찾는데 있기 때문에 의도적으로 억지스러운 주장을 가르치려고 하는 불순한 시도가 담겨 있는게 아니라면 그리 우려할 일은 아닐 것이다.

정도전의 마지막 시기는 필자의 의견으로는 드라마가 이상적이라고 할 정도로 정확하게 반영하였다고 생각한다. 가혹하리만큼 자신과 주변을 채찍질 해 가며 민본의 세상을 만들어 가고자 하는 정도전의 의지가 조재현이라는 명배우를 통해 너무나 생생하게 전달되어 왔고, 남아 있는 정도전에 대한 기록을 살펴보면 실제로 그러했을 것이란 짐작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이방원은 정도전을 해하고, 왕자의 난을 통해 형인 정종에게 잠시 왕위를 물려받게 하고, 자신은 세자의 자리에 앉은 후 불과 두어해만에 형식적으로 미뤄왔던 왕좌에 스스로 앉았다.

드라마를 보며 의문이 든 점이 있었다. 이성계는 정말 정도전이 만들어 가고자 하는 세상에 동의 했던 것일까 하는 그런 의문이었는데, 역사 속 인물의 진심을 오늘날 우리가 정확히 파악할 수는 없을지라도 얼마든지 미루어 짐작이 가능한 부분이 있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왕조를 세우는데 공헌한 왕자들은 대개 건국왕에 못지 않은 자들이었다. 따라서 이성계나 정도전이 뜻하는 바처럼 그렇게 쉽게 물러서고 수긍하는건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라고 볼 수 있다. 얼마전 포스팅한 글에서도 밝힌 바 있지만 만일 당나라를 개국한 이연이 만일 아들 이세민에게 황제의 자리를 물려주려 하지 않았다면 어찌되었을까?

이세민과 이방원은 공통점이 많다. 스스로가 왠만한 개국공신을 능가 하는 공이 있다는 점에서, 그리고 그런 공을 세울 능력과 식견이 있다는 점에서도 흡사하다. 조금 다른 점이 있다면 이연은 비교적 평범한 인물이었다는 점인데, 이건 이세민에 비해 그렇다는 것이지 이연 또한 일반적인 기준이라면 비범한 축에 속한다고 해석하는게 맞을 것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찌 당의 고조가 되었을까. 이렇게 보면 이연은 이성계가 아닌 정종과 흡사한면이 있다. 정종 역시 평범하다고 말할 수 없지만 권력에의 욕심이 없기에 동생인 방원의 뜻대로 움직여준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아무튼 정도전이 바라던 꿈과 대업을 이성계가 진정으로 함께 했는지는 알 수 없으나, 적어도 정도전이 남긴 행적을 보면 그럴 가능성이 농후하다는 생각이 든다. 설령 그렇지 아니할 지라도 최소한 어느정도의 공감은 있었을 것이다.

이방원은 이성계의 뒤를 졸졸 따라다니는 온실속의 화초가 아니었고, 그 스스로의 식견과 의지가 확고한 인물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그는 이성계처럼 정도전의 모든 것을 포용하진 못했지만 대신 정도전의 사후 정도전이 주장한 사병혁파를 비롯한 대부분의 개혁정책을 그대로 받아 들여 실행하는 선택을 했다. 결과론적인 말이지만 이방원은 조선의 기틀을 다지는데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 왕이었다는 이야기다.

만일 정도전의 대업이 이뤄졌다면 어땠을까. 당장 조선이 천국과 같은 세상이 될 수 있었을까. 이 글에서 필자는 이 부분을 말하기 위해 앞서의 긴 글을 썼다.

정도전이 가혹하리만큼 무리 했던 이유는 다름 아닌 그 스스로 외에는 진정으로 대업에 공감하는 이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한발자국이 아닌 두발자구 세발자국 앞서 있던 시대의 거인은 그렇게 평생을 외로운 투쟁을 했다. 왕도 관료들도 그리고 백성들도 모두 정도전의 이상향을 그대로 받아 들이려면 물리적으로 많은 세월이 필요할 만큼 당시는 왕과 귀족을 하늘이 내렸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았고, 하루아침에 바뀌기 어려웠기 때문에 이방원의 거사는 성공하게 되었던 것이다. 

이전에도 물론 서양과 동양의 인식차이는 있었을 것이되, 문명이 발달해 가며 태어날때부터 피가 다르다고 믿었던 귀족의 시대가 지나가고, 국민이 주인이 되는 의식이 자리 잡아가는 시기는 결국 찾아오게 되지만 결과물은 다르게 나타났다.

유럽에서 대항해 시대를 열어가던 시기 중국과 조서는 모두 부패하고 무능력했다. 중국은 스스로 천자의 나라로 여겨 머리를 숙이고 들어가지 않으면 교역의 대상으로 삼지도 않았다. 백만대군도 영국의 신식 화포 앞에서는 무용하였고, 극에 달한 탐관들은 나라가 혼란에 휩싸여도 아랑곳하지 않고 재물을 착복하길 멈추지 않았다.

뿐인가. 조선 역시 그러하였으니 민본의 대업을 이루지 못한 결과는 동양 여러나라에 뼈아프게 다가오게 되었다. 권력이 부패했을 때 그것을 견제하지 못하는 시스템의 한계는 어느 왕조나 다름없이 그리 길지 않은 시기에 찾아오게 되어 멸망하게 되는 단초가 되곤 했다.

이성계가 조선을 건국하고, 이방원이 조선의 틀을 탄탄하게 갖추고, 다시 세종대왕에 이르러서 조선의 문물이 크게 발전하는 과정은 중국의 명나라에서도 청나라에서도 거의 유사하게 일어났다. 아니 중세 이후의 거의 모든 나라에서 그러했다. 그리고 세종대왕과 같은 걸출한 인물이 생을 다하면, 이후 부패의 고리가 나라를 좀먹게 되고, 명과 청, 그리고 유럽이 각국이 그러했듯이 대개 이백여년의 세월이 왕조의 한계였다.

조선 육백년의 역사는 그래서 세계사에서도 매우 드문 케이스였다. 조선과 비슷한 시기에 건국한 명나라도 불과 이백몇십년 만에 청나라로 왕조가 교체되었다. 이렇게 흥망성쇠의 과정을 벗어난 케이스가 거의 없는 가운데 조선은 유교의 영향을 받은 탓인지 아미면 한만도의 지형이나 국민성 탓인지 수백년간의 부패에도 불구하고 육백년을 이어갈 수 있었다.

정도전의 꿈은 결국 이뤄졌다. 지구촌 역사의 많은 일들이 돌고 돌아 인류의 최종 선택지가 된 민주주의 국가 대한민국이 되었으니 오랜세월이 흘러 불가능에의 꿈이 이뤄졌다.

덕치를 하는 왕은 하늘이 내리지만, 재상은 백성이 만든다 라고 하는 주제는 오늘날에도 거의 그대로 들어 맞는다. 오늘날에도 대통령이라는 행정부의 수반이자 국가를 대표하는 자리는 어떤 개인의 의지만 가지고는 만들어 지지 않는다. 또한 백성 즉 국민의 뜻에 국회의원이 당선되어 입법활동을 한다는 점에서도 유사하다.

나는 우리 사회가 조재현과 여러 명 배우들의 열연을 통해 본 드라마 정도전이 전해주는 메시지를 충분히 받아들였을 것이라 믿는다. 국회의원이나 고위공직자는 스스로의 체면을 세우는데 급급하지 않고 오로지 국민을 위한 일에 쓰이는 도구가 되는 자리라는 인식하에 책임을 다하길 바래본다. 이런 정치인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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