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이십여년전 15살때 학교앞 육교를 건너면서 세상을 다 안다는 생각을 했다. 나이가 들고 이 생각이 얼마나 바뀌었을까. 큰 차이는 없지만 다른게 분명 있다. 삶은 내가 미처 알지 못하는 것들이 끊임없이 계속해서 내앞으로 달려 들어 온다. 피할 수도 없고, 속도를 조절할 수도 없다. 원하든 아니든 내 의사를 무시한 채 정신 없이 부딪혀 온다. 나이가 들면서 점점 그런 것들에 대해 대처하는 일종의 요령이 생겨 나간다. 그리고 반복 되는 일들에 대한 자기만의 보는 방법과 사고 하는 스타일을 정립해 나가게 된다.

내가 어릴 때 가장 큰 인기를 끌었던 가수는 이선희 였다. 그녀의 전성기 때는 단연 독보적이었다. 조금더 시간이 흘러 서태지와 신승훈 김건모가 가요의 전성시대를 열기 전 80년대 중후반은 이선희의 인기가 타의추종을 불허하고 있던 때였다. 그때 나는 생각했다. 왜 이선희에게 가요대상을 주지 않고, 자꾸 다른 트로트 가수에게 상을 줄까라고. 물론 지금 생각해도 보수적인 텃세가 수상에까지 영향을 미친게 아닌가 하는 의혹은 남아 있지만 과거처럼 마냥 억울하다고만 생각지는 않는다. 그 이유는 노래를 즐기고 사랑하는 연령층의 분포에 있어서 당시 트로트의 비중이 상당했음을 이제는 알기 때문이다. 단순히 1위 몇번하는게 중요한게 아니라 얼마나 노래가 대중들의 삶에 깊숙히 들어갈 수 있는가도 생각해 봐야 하는 문제인 것이다. 물론 기록적인 측면을 조금 과하게 배제한 부분은 아직도 아쉬운 부분으로 남는다.

여기서 짚고 넘어갈 부분이 있다면, 이선희가 활동하던 시기에 인기 있던 다른 가수들이 폄훼당하거나 하는 분위기가 있었는가 하면 그렇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런데 어느순간부터는 내가 좋아 하는 가수가 아닌 다른 가수에 의해 조금이라도 피해가 있다고 여겨지면 굉장히 극렬하게 반응하는 팬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적어도 서태지와 아이들 때까지만 해도 심각하지는 않았으나 HOT가 등장하고 팬덤의 결속력이 강해지면서부터 멤버 누군가와 열애설 비슷한 이야기만 나와도 면도날을 보내고 하는 일이 사회문제로까지 번져 TV뉴스에까지 등장했다.

내가 열다섯에 세상을 다 알았다고 생각했던 것처럼 지금의 10대들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내가 나이를 먹어가듯이 내 아래 동생들이 자라나 똑같은 생각을 하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내가 좋아 하는 가수를 다른 사람들이 존중해주길 바란다면 내가 먼저 타 가수의 팬들을 존중해 주어야 한다.

당시 HOT의 인기를 말하자면 지금 가장 인기 많은 가수가 열이 있다고 가정하면 그중 일곱여덟은 합친 것만큼의 압도적인 인기를 자랑했다. 그런데 지금 어떤가. 그들을 좋아 했던 팬들은 모두 누군가의 아내가 되고 엄마가 되어 살아가고 있다.

지금의 10대도 언젠가 그런 날이 왔을 때 웃으며 내가 좋아 했던 스타를 기억하고 싶다면, 성숙한 팬문화에 동참할 생각을 해야 한다. 그렇지 않는다면 고스란히 부메랑이 되어 팬과 스타 모두에게 돌아가게 된다. 남의 일이라고 함부로 말하는 10대들을 보면 안타까울 때가 많다. 그런 습관이 20대가 되어서도 똑같이 반복되고 있는 것도 목격할 수 있다. 나이를 먹어가면서 달라질거 같지만 한번 좋지 않게 형성된 습관은 어떤 큰 계기가 없이는 고져지기 어렵기 마련이다.

왕따를 당했던 친구가 체구가 커지고 힘이 세지자 자신이 남을 왕따시키는 일에 나서게 되었다는 소식을 그리 어렵지 않게 접하는 시대가 되었다. 마치 정의의 사도라도 된 것인양 떠들고 다니지만 실제 눈앞에서 약자를 괴롭히는 일을 접해도 눈감고 귀막고 외면해 버리는 세상이다.

특히 집단을 이뤘을 때 문제는 심각해 진다. 불의를 보면서도 왜 내가 나서야 되는데 라는 생각. 나와 비슷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무리를 이루고 있다면 그런 무리의 잘못된 행동에 동참함으로서 죄의식을 가지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인 것인지 그런 핑계거리를 잔뜩 안고 서슴없이 남을 비방하고 괴롭힌다.

인터넷 댓글을 보다 보면 안타까운 점은 한번 악플을 달기 시작하면 습관이 되서 적정한 라인을 설정하지 못하고 조절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필자라고 해서 댓글을 쓰지 않는 것도 아니지만 어느정도 선을 지키려 하는 면이 있는데 반해, 허세와 이기심에 물들게 되면 자기조절은 핑계이자 약한 모습이라 생각하게 된다.

특히 남을 비난 하고자 할 때는 그런 행위 자체가 자신의 심성을 어둡게 물들인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좋아 하는 가수를 응원하는 마음을 이해할 수 없는건 아니지만 다른 사람이 좋아하는 마음도 같이 생각할 줄 알아야 성숙한 팬덤이 될 수 있고, 그런 생각과 행동이 스타에게 도움이 된다. 열다섯에 좋아 하던 가수가 몇해에 걸쳐 히트곡을 내고 인기를 끈다 해도, 다시 그 뒤를 잇는 스타가 나오고 그 스타를 좋아 하는 팬들이 생기게 된다. 이를 인정치 못하고시샘하고 비방하는 습관을 들인다면 자연스레 피해를 입는걸 억울하게 여기고 집단으로 반발하게 된다.

보아가 13살의 나이에 데뷔하게 되었을 때 HOT팬을 중심으로 이상현상이라고 할만큼 격렬하게 반발했다. 이런 경험은 SM이라는 회사를 이끌어 가는 경연진에 큰 경험이 되었을 것이라 짐작되며, 그러하기에 이후 데뷔시키는 그룹에는 반복되지 않도록 많은 주의를 기울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HOT 뿐만이 아니라 이후 인기를 끈 많은 아이돌 가수들이 세월이 지나 우스갯거리로 전락하는 상황을 당시의 팬이었지만 이제는 사회인이 되고 혹은 아이엄마가 되어 지켜보는 심정은 어떠할까. 지금의 10대도 그리 멀지 않은 시기에 그렇게 될 수 있다.

요즘 아이돌문화중 서열매기기가 10대와 20대 사이에서 알게 모르게 보편화 되었다. 어느날 댓글을 보다 놀란적이 있는데, EXO의 와 BAP팬들간의 설전이었다. 누가 더 낫고 못하고를 따지는거야 팬들이 모여 있는 장소에서는 할 수 있는 일이고 공개적으로 논한다 해도 지나치지 않으면 굳이 문제삼거나 할 일은 아닌데, 이런 설전이 벌어지다 보면 걷잡을 수 없게 되는 경우를 흔히 볼 수 있다. 심지어 어떤 엑소팬은 이제 빅뱅하고 비교해야할 우리 오빠들을 니들 따위하고 비교해야 되겠느냐며 열을 올리고 있었다. 그런 태도를 공공연히 취한다면 뒤를 이어 다른 어떤 인기 그룹이 등장하게 되었을 때 같은 말을 듣게될지도 모른다. 엑소를 굳이 거론하는 이유는 요즘 곳곳에서 안보이는데가 없을 정도로 자주 댓글에서 확인되고 있기 때문인데, 보다 성숙한 자세가 좋아 하는 그룹을 더욱 빛내줄 수 있다는 걸 말해주고 싶었다.

 내가 남을 적대시 했을 때 조금씩 쌓여 가는 부정적인 인식은 결국 부메랑이 되어 돌아 오게 되는데, 한창 지지해주는 팬덤이 결속력이 강할때는 방패가 되어줄 수 있지만, 결국 시간이 흘러가며 점점 치고 올라오는 신인들이 많아지고  팬덤의 결속력이 약해질 때가 도래 하면 누적된 문제는 터져 나오게 된다. 즉, 내가 좋아 하는 가수의 보다 먼미래까지 생각하고 응원해주길 바란다면, 적이 아닌 친구를 많이 만들어야 할 것이며, 내가 한 행동이 가수의 이미지로 이어지고, 그로 인해 후일 좋아 하는 멤버가 솔로로 독립하거나 하게 되었을 때 그 스타의 미래에까지 많은 영향을 끼치게 된다고 점을 이해한다면 앞으로 말과 행동에 조금은 더 신중한 10대가 되어 있을 것이다. 

영원할 순 없지만 그 한때를 멋지게 살아 가는 가수와 팬이 되었으면 좋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