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가 도덕성을 잃었을 때 대처하는 방법 2가지

진보와 보수는 대략적으로만 보아도 명백하게 드러나는 각각의 장단점이 있다. 예컨데 변화를 갈망하는 젊은이들의 마음은 본능적으로 진보에 가까우며 사회가 역동적이고 빠른 발전이 이뤄지는 시기라면 더더욱 진보의 물결은 거세기 마련이다.

그런데 이런 진보의 가장 강력한 지지 이유가 되면서 놓칠 수 없는 요건이 바로 '도덕성'이다. 들끓는 열망에 찬물을 끼얹는 격이 되어 버리는 경우는 대부분 도덕성 논란이 일었을 때이며, 반대 진영의 주요 공격논리가 되고 있다.  차라리 사회를 겪고 중년에 접어들면 맹목적인 도덕성을 추구하기 보다는 실속을 챙기는 세련됨을 이해하지만 젊을 수록 새하얀 깨끗함을 추구하는 경향이 짙어서 조그만 흠이 보이면 그 반대급부적인 배신감을 크게 갖는 것이다.

그 한예로 지난 정부 초기 대선비용에 대한 논란이 일었을 때를 잠시 되돌아보자. 새누리당(당시 한나라당)의 반의반의반도 안되는 비교자체를 하기 어려운 적은 불법 선거비용이 적발되었을 때 당시 여당이 더 큰 타격을 입었던 이유도 모두 진보의 '도덕성' 이 갖는 특징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엄밀히 따져보면 대한민국의 선거방식은 많은 개선점이 있고 그 가운데 자금 조달이 어려워 불법선거자금이 발생할 소지 자체가 크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아니된다. 지구당을 순회 하지 않으면 후보자체가 될 수 없는 탓도 있고. 아무튼 이 유혹을 벗어날 수 있는 유형은 유시민 같이 후원금이 잘 들어 오는 경우거나 인기정치인 아니면 본래부터 막대한 재산이 있는 경우 정도로 제한된다. 그리고 큰 자금과 작은 자금이 차이는 그 댓가로 차이나게 된다.

"냉소적 비판으로 돌아서기보다 열정의 초심을 기억하자"

열정이 식었을때 냉소적으로 돌아서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다. 필자는 한국인의 냄비근성이라는 단어에 담긴 함의를 대부분 인정하지 않고 있지만 일부내용에 대해서는 공감하고 있는데 그 중 한가지가 정치에 대해 지나치게 빨리 냉소적으로 변화하는 진보 지지자들의 태도 변화이다.

세상의 삶에서 결코 온전한 사람도 무리도 찾기 어렵다. 큰 틀에서의 정치적 지향점이 일치하는 사람들이 모여 당을 이루고 목표를 향해 나아갈 때 각각 세부적인 문제들로 인해 갈등이 빚어진다해서 그것을 과장되이 해석하거나 그 해석에 동참하며 스스로의 가치를 갈아먹는 행동을 해서는 아니되면 도덕성 논란 역시 온전히 깨끗하길 바라는 것 역시 무리임을 알아야 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애초부터 흠이 없길 바라는 것보다 그 흠이 발견되었을 때 어떻게 대처하는가가 중요한데, 현재 민주당은 그 대처방법에 있어서 지지자들에게 그리 만족감을 주고 있지 못하고 있다. 진보의 비판이 민주당에 상당히 쏠리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필자는 진중권에 대해 상당한 비판적 시각을 갖고 있다. 진보진영의 흠이 되는 논란이 일었을 때 구조적인 제도개선에 대한 쓴소리는 보다 세련되어야 한다. 내부적 성찰을 유도하고 외부적 공격에는 그 초점을 분산시킬 줄 알아야 한다. 진중권은 필자가 주장하는 세련된 진보로 포용하고 아우르는 방식과 전략적인 행보가 아닌 온전히 흠이 없는 고결한 진보를 꿈꾼다. 사람이 사는 세상이 결코 그러할 수 없으며 열명이 모이고 백명이 모이면 분명 흠이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인정치 못하고 있다. 흠 없는 온전한 도덕성만을 주장하다 보면 지지세력은 이탈하고 너도나도 냉소적 비판자가 되어버린다. 그 스스로가 그러하기도 하고.

냉소적이 되지 않기 위해서는 구조와 틀에 갖히지 말고 자유로우면서 사람 중심의 생각이 필요하다.


 

통합진보당의 경선부정 및 민주당의 보수화 비판에 대해

통합진보당의 경선부정이 사실로 드러났다. 이제 흠이 있다는게 확인되었으니 위에서 필자가 주장한 데로 그들이 어떻게 대처하는가를 주목하자.

이런 일로 지지를 철회한다고 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들은 패배자일 뿐이다. 필자가 주장하는 세련된 진보는 바로 거친 바람이 불어 왔을 때 부러지지 않는 유연한 진보를 말한다. 경선 부정의혹 관련 뉴스가 나오자 마자 진중권을 비롯해 몇몇 유명인사들의 비판적인 멘트가 쏟아져 나오자 그것은 다시 언론에 의해 대대적으로 보도 되고 있다. 그럼 그런 멘트로 인해 변화가 찾아 올까? 그런 멘트를 해서 얻는 이득은 무엇일까.

논란이 일자 신율은 "지도부 총사퇴와 비대위 체제' 를 주장했다. 이러한 발언에는 세련된 표현이 중요하다. 많은 진보진영의 지지자들이 요구하고 바라는 문제들에 대한 개선책이 담겨 있으면서도 지지율을 훼손하지 않을 수 있어야 한다. 유명한 인사일수록 책임감이 있어야 하고 그 책임감에 걸맞는 세련된 표현으로 지지율을 잃지 않으면서도 변화에 필요한 여론조성을 할 수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고 오로지 이것저것 생각 없이 하는 비판은 내부 '팀킬'이라는 말을 듣게 된다.

 

"세련된 진보가되어 뜻하는 바를 효과적으로 관철하자"

예를 들어 보자.

A라는 문제점이 있다. 논객은 10명이다. A라는 문제점이 반드시 바귀어야 한다고 믿는다면 10명이 말하는 멘트의 핵심에는 A가 앞에 되어야 하고 나머지 A로 인해 발생한 사건은 그 다음이 되어야 한다.

그런데 세련되지 못한 표현을 하는 논객이 다수라면 A라는 문제가 개선되는데는 영향을 주지 못하면서 사건자체에만 시선이 쏠리게 하니 차라리 그런 멘트는 안하느니만 못하다. 

이번 경선부정은 도덕성에 꽤나 치명적인 사건이다. 그러나 이런 큰 사안 마저도 관심 없는 사람들은 신문이나 인터넷기사의 제목만 보고 지나치는 경우가 많다. 전략적 대응이 필요한 대목이며 개선이 필요한 내용에 대해 얼마나 고려할게 많은지를 말해주고 유력인사들 및 시민사회단체 등 내뱉은 말이 일반인들에 비해 크게 퍼질만한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라면 신중에 신중을 거듭해 의견을 표현해야 하는 이유이다.

나는 종종 큰 돌을 쥔 사람도 작은 돌을 쥔 사람처럼 생각하고 그돌을 '문제점'을 향해 던지는 것을 목격한다. 왜 자신이 큰 돌을 쥐게 되었는지조차 모르거나 그 책임감에 대해 생각해보지 않은 경우라면 더욱 문제라 아니할 수 없다.

정리해보자. 세련된 진보는 잘못에 대한 대응에 보다 철저하고 내부적인 빠른 변화가 필수적이다. 그런데 우리나라 진보는 정책적으로나 변화의 속도 및 폭에 대해서는 상당히 보수화되어 있다. 그래서 비판을 많이 받는다. 현재 필자가 진단하는 진보의 문제는 크게 두가지로 첫째는 혁신적이고 추진력 있게 추구하는 목표설정이다. 좀더 쉽게 말하자면 '진보적 가치를 품에 안은 후보'가 필요하다는 말이다. 둘째로는 진보적 가치를 추구하는 진보 진영의 대표자들이 수년간 행해온 '소탐대실'하는 행태를 해왔음을 반성하고 여러 뜻있는 인사들이 지적하는 당내외적인 여러 문제들을 하루속이 개선하는 것이다.

필자가 여러 주장을 해왔지만 시중에 떠도는 한마디안에 그 뜻이 모두 담겨 있다.

"차라리 민주당이 아무행동 안했다면 총선에서 승리했을 것이다"

민심이다. 개선해야할 부분에 집중해 성과를 내지 못하고 우왕좌왕 했다는 비판을 받아도 싼 대목이다. 그러나 필자가 글을 쓸때마다 항상 주장하는 바지만 개선하고 고쳐나갈 희망을 버리며 자포자기 해서는 안된다. 투표하지 않거나 관심을 거두어서도 안된다. 필자가 길게 글을 쓰는 이유는 바로 이런 열정을 무너뜨리지 말자는 주장을 하기 위함이다. 영향력 있는 인사들의 세련된 정치표현을 주장하는 이유도 그들의 말이 정치에 대한 무관심에 일조해선 안된다는 생각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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