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와 십일조, 그리고 봉사와 나눔에 대해

기독교에 대해 잘 아는 분들도 있지만 잘 모르는 분들도 있고, 또한 기독교인이면서 십일조에 대해 잘 모르는 분들도 있습니다. 교회의 봉사와 나눔은 십일조와 연관이 있는데 이에 대해 말씀드리려 합니다

구약에서의 십일조는 아브라함이 받은 축복에 대해 감사의 마음으로 바치고, 이후 모세의 율법에 이르러 이스라엘 백성 전체에게 부과된 의무가 되었조. 구약전체로 보면 십일조는 늘 언급되진 않았으되 하나님이 주신 축북을 감사하는 마음으로 십의 일을 드리고 그 십일조로 하나님을 위해 봉사 하는 레위인과 제사장에게 바치는 것으로 지켜야 하는 율법이었습니다. 그러나 형식에 얽매이지 않는 다는 것은 다윗왕의 하나님의 성전을 위해 많은 재물을 사용할 때에 십일조를 굳이 드렸다는 기록이 없다는데서 찾아 볼 수 있지만 기본적 원리는 계속해서 지켜지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미국과 유럽의 많은 나라들은 십일조를 의무로 생각지 않습니다. 신약에 이르러 예수님은 율법을 완성하고 성취하며 구약의 율법을 배척하는게 아닌 형식으로서의 율법이 구원에 우선하는 것을 경계하되 하나님을 믿고 구원받은자는 율법을 지켜야 하는 것으로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은 십일조를 드리라 말씀하신적은 없지만 이것도 저것도 지키라 하시면서 율법을 수단으로 구원받는게 아님을 말씀하십니다.

 이 십일조의 목적은 오늘날의 교회에 적용해 보자면 재정을 담당하고 교회일에 봉사 하는 이들이 성도들의 십일조로 생활하고, 목사님에게는 사례비를 드림으로서 레위인들이 제사장에게 십일조의 다시 십일조를 드린 목적과 상통합니다. 그러므로 십일조의 근본 원리는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나님께 드리는 십의 일인 것이고, 사용처는 위에 적은것과 같습니다. 또한 교회의 봉사와 나눔은 이웃을 도와야 하는 십일조의 목적의 다른 하나입니다.

오늘날 교회에 가면 십일조를 무척이나 강조합니다. 언뜻 들으면 십일조가 구원의 조건으로 들릴 수도 있는 문제입니다. 또한 기독교인들이 아닌 사람들의 비판을 기독교가 전적으로는 아닐지라도 일부 일리가 있는 문제제기는 새겨 들어야 합니다. 일단 하나님의 일을 하기 위해 예배당을 짓는 것은 기독교인이라면 응당 필요한 일이지만 지나치게 크고 화려하게 짓는것은 문제가 있습니다. 이는 헌금을 부당하게 사용하는 것과도 연관이 있습니다. 십일조는 하나님의 일을 위한다는 필요에 의해 십의일이 아닌 그 이상도 가능하지만 일부 대형교회들은 그렇게 모인 헌금으로 봉사와 나눔은 잊고 남는 헌금을 엉뚱한 곳에 쓰고, 나아가 교회지도자들이 자신들의 과분한 복지를 위해 사용하는 것을 보면서 과연 이런 행위가 옳은 일일까라는 의문이 듭니다. 일전에 어떤 은퇴하는 목사님의 퇴직금이 20억에 가깝다는 기사를 보고 입에서 욕이 나오려 했던 것도 본연의 뜻을 잃어버린 엉뚱한 헌금의 사용이 세상에 얼마나 역겹게 받아들여질지 예상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어려운 사람들을 돕는 것은 십일조의 목적에 해당합니다. 교회지도자들이 마음대로 쓰라고 내는 헌금이 아닌 것이조. 특히 하나님이 원하는 행사가 아님에도 교회재정으로 행사를 하는 경우는 지극히 경계해야 합니다. 마찬가지로 임의대로 해석하여 집행하는 경우 타락의 원인이 되기도 합니다. 세상의 기준이 교회의 기준인 것은 아니라 할지라도 적어도 교회의 기준이 아닌 것으로 세상을 호도해서는 안되조. 다시 말해 성경 어디에도 과도한 복지를 위해 교회돈을 쓰라고 되어 있는 구절은 없습니다. 세상의 기준과 교회의 기준이 맞딱뜨리는 부분이 없다고 해서 마음대로 수십억의 과도한 체면치례용 경비를 지불한다는 것은 죄악이라는 것이조. 한마디로 수억원대의 수입외제차를 모는 교회지도자와 같은 경우를 말하는 것입니다.

또한 자신의 정치적 목적에 의해 행하는 일을 두고 그 경비를 교회에서 내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는 지극히 잘못된 일입니다. 특정 정치적 성향이 강한 일부 대형교회 목사님들이 그러한 경우입니다. 또한 땅을 사고 그것을 수단으로 재정을 불리려 하는 행위 역시 자제해야 합니다.(필요의 의해 다르기는 합니다) 이는 다시 말해 임의적인 해석으로 본래의 목적을 상실해서는 아니된다는 뜻입니다. 단 한푼이라도 목적을 벗어나서는 아니됩니다.

필자는 오늘날 교회가 봉사와 나눔에 보다 앞장서길 바랍니다. 그 이유는 세상의 기준과는 조금 다르지만 그럼에도 사랑의 실천으로 어려운 사람을 돕는일은 더욱 확대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유명한 목사님들은 엉뚱한 정치집회에 이름을 올리려 들지 말고 봉사와 나눔의 자리에 이름을 올리는 것을 자랑스러워 해야 합니다.

위의 주장을 조금은 확대하여 해석하면 하나님을 믿지 않는 이들에게 전파하기 위해서라도 아름다운 선행을 해야 합니다. 물론 이 역시 기독교가 아닌 이들의 이유와는 조금 다릅니다. 세상의 기준에서의 의로움은 만인에게 통용되는 의로움이지만 그것이 기독교에게 중요한 것은 아닐 수 있습니다. 그러나 결국에는 세상에서의 의로움을 취함으로서 하나남의 사랑을 드러낸다면 그것 또한 방법의 차이일 뿐 모두에게 좋은 목적으로 가는 길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반대로 세상의 의로움과 거리가 있는 행동을 주관적 판단으로 임의로 행하면서 그것을 하나님의 뜻이라 거짓으로 이야기 하는 자들은 큰 죄를 범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럼으로서 기독교를 지탄하고 거리를 두는 무리가 한사람이라도 늘어난다면 매우 큰 죄를 짓고 있는것과 다름 아닌 것입니다.

이 글은 인터넷을 주무대로 활동하는 필자의 입장에서 근래 기독교에 많은 돌을 던지고 있는 네티즌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적은 글입니다. 다시 말해서 세상의 선행이 기독교와 정확히 일치 할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지만 기본적으로 어려운 이웃을 돕고자 하신 하나님의 뜻과 합당한 선행은 앞장서고 확대해야할 것이며, 일부 지도자들의 그릇된 판단을 하나님의 뜻인양 거젓이로 선동하고 임의적 판단으로 교회재정을 한푼이라도 허투루 사용하는 이들은 하루빨리 사라져야 한다는 주장을 말하고 있습니다.

 아무튼 필자가 이글을 통해 전하고자 하는 결론은 적어도 어려운 이웃을 돕는 것만큼은 하나님의 뜻이기도 하면서 세상에서의 선행인 것이니 특정정치인이나 쫒아 다니면서 엉뚱한 욕심이나 채우려 하지 말고 봉사와 나눔에 보다 교회지도자들이 나서야 한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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