뿌리깊은나무, 현실과 환타지를 오가는 설정 베스트3

 

화제의 드라마 뿌리깊은나무가 3주차 방송을 마쳤다. 그간 스토리의 압축과 케릭터의 디테일한 소개를 오가며 인물 및 사건전개의 속도조절을 통해 긴박감과 이해도를 높이는 과정을 거쳤다면 이제는 심화된 스토리에 몰입해 들어갈 단계에 접어들었다고 할 수 있다. 5회와 6회에 들어서는 슬그머니 도담댁(송옥숙)을 비롯한 반촌의 중심인물들이 다시 재등장하기 시작했고, 검시관 및 태평관 등 이어지는 여러 사건을 연결해주는 감초와 같은 역할들의 불쑥뿔쑥 등장하고 있다.

이 즈음하여 뿌나가 추구하는 여러 독특한 설정들이 소이의 천재성에 빗대 떠올랐기에 대표적인 환타지적 설정 베스트3를 꼽아보았다.
 

소이의 천재성과 한글창제의 역할론

소이는 강채윤이 노비시절 똘복이와 함께한 어린 소녀로 심온가문이 혈겁을 당하는 과정에서 그 충격으로 말을 잃었지만 한번 보면 잊지 않는 천재성으로 이도(세종대왕)를 도와 한글창제의 중요한 역할을 하는 역이다.

01. 선 굵은 남자들만 득실거리는 스토리와 설정 중에 청량감을 주는 아리따운 꽃과 같은 존재
02. 한번 보면 잊지 않는다는 판타지 및 장르소설의 대표적인 설정의 주인공

소이를 중심으로 드라마를 보면 요즘에는 흔히 보기 어려운 설정이 보이는데, 중년의 이도와 팔팔한 강채윤의 사이에서 소이라는 존재가 주는 이미지는 묘한 환타지를 안겨주며 종종 사랑을 주제로한 문학작품에서도 볼 수 있다. 6화에서 보면 이도는 소이를 자주 찾아 그녀로부터 심리적인 위안을 받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즉, 이도는 강채윤을 아끼는 마음과 이용하려는 마음, 그리고 어느정도 경계하는 마음까지 매우 복합적인 관계가 이미 설정되고 있는데 거기에 이소가 중간에 있음으로 인해 조금은 불편한 관계까지 더해지고 있다.

드라마에서는 소이의 천재성을 드러내는 장치로 한번 보면 잊지 않는 기억력을 가진것으로 설정되어 있지만 실은 기억력이 좋다고 천재성이 있는 것은 아니다. 대개 보편적으로 그렇게 인식하는 경우가 많으니 그냥 그러려니 하고 넣어버린 설정인 것이다. 공식홈의 드라마소개란에 무술사극이라고 대놓고 표현하더니 판타지무협이나 애니메이션서 자주 등장하는 천재로 소이를 묘사하여 극의 가장 핵심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게 하였다.

 적당한 스케일에 주변스토리를 철저히 배제하고 중심스토리를 디테일하게 다루는 과정에서 소이는 몇가지 역할을 더 하게 되는데 1. 강채윤과의 관계, 2. 한글창제의 중심역할, 3. 이도와의 관계 이 세가지 상황은 소이의 천재성과 말을 잃은 후의 침착하면서도 뜨거운 열정을 가슴속에 품고 있는 외유내강의 여성상을 그리고 있다.

무휼로서는 표현할 수 없는 그 이상의 무술환타지

"이방지"

이 한사람의 등장은 매우 의미심장하다 등장씬는 아주 짧았지만 '뿌리깊은나무'라는 드라마에 등장하는 대부분의 인물설정은 대개 이방지의 등장과 흡사하게 나오고 있다.

01. 이방지는 무휼마저 넘보지 못하는 숨은 진짜 조선제일검이며,
02. 무휼과 강채윤 그리고 밀본의 암살자, 검시관이 알고 있는 암살수법에 두루 관계가 있으며,
03. 차후 무휼이 강채윤을 더욱 경계하게 만드는 요소일 것이며, 강채윤의 무술수위를 짐작케 한다.

 

 

모든 인과관계는 유기적이어서 강채윤이 이방지에게 무술을 배우게 되면서 마음 속에 담아 둔 복수에 대한 염뭔을 실현시켜 나가게 된 것이 이방지로부터 비롯되었다. 극에 그가 더이상 등장하지 않더라도 이렇게 중요한 역할의 주인공들과 밀접한 연관성을 가지고 있는것 부터가 참으로 치밀한 설정이 아닌가.

이방지의 또다른 역할이 있다. 바로 무술의 판타지에 그의 역할이 있다는 것이다.

무휼은 세종대왕과 함께 하고 있기에 드라마에서 자주 얼굴을 내밀고 있어서 무작정 비현실적인 무술의 주인공으로는 적합하지 않게 된다. 즉, 극의 초반부터 조선제일검이라 하여 무휼의 강함이 곧 강채윤이 넘어야할 벽으로 인식시켜나갔다면, 그 한계는 분명히 시청자들이 사극에서 납득할 수 있는 수준의 무술수준일 것이다. 전형적인 사극스타일이 아니라 추리물의 성격이 강하지만 그래도 역사적 사실과 역사적 인물에 근거한 드라마 및 원작이기 때문에 더욱 그러할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무휼마저 넘볼 수 없는 최강자로 이방지를 등장시킴으로서 비현실적으로 받아들여질 수도 있는 판타지적 설정을 비교적 거부감이 적게 조금 더 추가할 수 있게 되었다.

하늘을 날아 오르고, 물 불 흙의 속성을 가진 암살수법이라니 정말 무협지에서나 볼 듯한 디테일한 무술설정이 아닌가. 그간 무술가들이 등장하는 드라마에서 이렇게 상세한 스킬이 등장한 경우가 얼마나 있단 말인가. 이는 곧 기존의 드라마작가들이 장르소설이 전문성이 없었다는 뜻이기도 하고 뿌나의 원작작가와 드라마 작가와 차별점이다.

강력한 생략기법이 상상력을 자극한다.

뿌나에서는 대신들이 모여 회의하는 장면이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 아주 가끔 ~ 볼까 말까 하다. 이는 판타지적 설정에 아주 강력한 대비점으로 작용할 수 있기 때문으로, 너무 현실적인 장면이 자주 등장하면 환타지적 설정은 그 힘을 잃게 마련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드라마는 인물 및 사건 진행에 아주 디테일한 심리묘사나 동일한 하나의 장면을 다수의 케릭터가 바라보는 입체적 전개를 보여주면서도, 비중이 조금이라도 적은 부분 혹은 루즈해 질 수 있는 사건의 전후관계 및 중요도는 떨어지지만 사건의 한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인물들의 배경설정 등과 같은 부차적인 면은 아주 싹둑 잘라내고 보여주지 않는다. 중요도가 조금이라도 더 있다고 하더라도 그 경우에는 차근차근 사건이 진행될때마다 불친절함을 덜어내기 위해서라도 조금씩 추가해 나나간다. 예를 들어 초반 중요한 사건의 열쇠를 쥐고 있던 윤필이 급작스레 죽었지만 그에 대한 정보는 오히려 차근차근 하나하나씩 밝혀지고 있다.

이러한 생략설정은 사건 및 등장인물의 포인트를 잡아 보여주지 않으면 드라마가 굉장히 어려워지게 되지만 잘만 잡아주면 몰입에 전혀 방해되지 않고 오히려 중심스토리에 집중할 수 있게 되는 장점이 있다. 이는 마치 영화와 흡사하다는 생각이 들게 하는데, 등장하는 인물마다 역할이 우선되어 나오고 그 역할에 맡게 대사와 케릭터가 좁혀져들어가므로 짧은 등장일지라도 불필요하게 나오는 대화장면같은건 없고, 그 역할과 100% 일치하는 대사만이 시청자들에게 들려오게 된다. 심지어는 주인공인 세종 이도와 똘복이 강채윤도 마찬가지이다. 개인적인 사사로운 대화장면이나 인물관계는 일체 등장하지 않고 오로지 사건을 중심으로 엮여진 부분만 나온다.

예컨데, 기존의 사극이었다면 이도(세종)가 자신을 불러 사건수사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자 하는 것을 강채윤이 전해듣고 만나러 가기전 이도를 암살하기 위해 발목각반에 비수를 숨겨두고 각오를 다지는 장면이 10분간 나왔을 지도 모르는 것이다. 하지만 뿌나는 그저 강채윤의 정체를 눈치챈 무휼이 그를 제거할 결심을 하는 그 타이밍에 이도에게 먼저 불려가고 암살을 결행하려고 하는 찰나에 무휼이 막아내며, 다시 뒤돌아서서 언젠가는 반드시 복수할 것을 다짐하는 장면까지, 사건전개는 숨가쁘게 진행되면서도 정작 방송분량이 길지 않다. 이러니 몰입도가 높을 수 밖에 없고, 한시간을 10분처럼 보내며 시청할 수 있는것 아닐까.

 

지금까지 <뿌나>리뷰였습니다. 좋았다면 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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