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 필명 사자비를 쓰고 있는 제가 가수나 배우에 대해 언급할 때 주로 써먹는 서론이 바로 나이대와 관련된 이야기입니다. 배우는 대개 어느정도 내공이 쌓여 연기가 무엇인지 알아갈 때가 보통 서른을 넘기면서 부터인데요. (같은 이유로 젊은 나이에 연기력까지 갖춘 극히 적은 수의 배우들이 크게 주목받조) 그나마 그 즈음에 좋은 작품을 만나면 그나마 다행이지만 그렇지 못하고 연예계에서 쓸쓸히 퇴장하는 연기자가 상당히 많이 있습니다. 특히 어린나이에 외모로 주목받았다가 차츰 나이가 들어서도 연기로 평가받지 못했던 김태희와 같은 경우에는 좋은 작품을 만나기 위한 목마름이 남다르다고 할 수 있조.

이렇게 좋은 작품은 좋은 배우를 찾고 좋은 배우는 좋은 작품을 찾게 되지만 서로가 맞닿을 수 있는 연결 접점은 쉽사리 찾아지기가 힘이 듭니다. 특히 가장 대중적이고 흔하고 쉬워보이지만 그래서 더욱 차별성이 어렵고 난이도가 있는 로맨틱코미디 장르라면 더더욱 배역을 맡을 수 있는 조건이 까다롭다고 할 수 있는데, 이번 '마이프린세스'의 '이설' 역을 김태희가 맡게 된 것은 약간은 의외의 일이기도 합니다. 보통 로맨틱 코미디의 필살 기법은 최대한 장르의 특성을 잘 살릴 줄 아는 맥라이언 같은 류의 이미 검증을 거친 배우거나 아니만 완전히 새로운 이미지의 풋풋함마저 갖춘 신인배우가 여주인공을 맡는 것인데, 김태희는 이 두가지에서 벗어나면서도 왠지 딱 맞는 옷을 입은 듯한 느낌을 주니 이색적이기까지 한 것이조.


김태희, 대중의 편견을 깨고 반전배우 등극.

돌이켜보면 김태희의 연기경력이 적지 않습니다. 그리 많은 수의 작품을 한 것도 아니지만 그렇다고 CF퀸으로 불리웠던 다른 여배우들에 비해서는 꾸준히 작품에 출연해 온 편입니다. 아마도 연기를 대하는 진정성이 있었던 것으로 때문이겠조. 참! 김태희 하면 떠오르는 인물이 있는데 바로 김남주입니다.  예전 김남주의 이름을 대중에게 본격적으로 알리게 된 해당 CF는 정말 충격 그 자체였고(개인적으로는 역대 최고의 깊은 인상을 남겼다고 봄), 그렇게 그녀는 톱스타가 되었지만 장기간 CF계의 절대권좌를 차지했던데 비해 배우로서의 이미지는 약했던게 사실입니다. 그런데 그녀가 최근 출연중인 '역전의 여왕'이라는 드라마 제목처럼 다들 이제 CF퀸의 권좌에서 슬슬 밀리고 결혼과 더불어 잊혀지지 않겠느냐는 말을 듣고 있던 몇년전 대중의 흔한 편견을 깨고 다시 돌아왔을 때 필자는 놀랄 수 밖에 없었습니다. 대개 그것이 쉽지 않은 일이기 때문이조. 김희애 채시라 등 90년대를 풍미한 배우들 정도가 아니라면 보기 힘든 경우라고 할 수 있습니다.

김태희는 '마이프린세스'로 완전히 다른 배우가 되었습니다. 반전에 성공한 것이조.

극심한 이미지소모, 그 자체가 넘기 어려운 산

특히 김태희는 이미지소모가 극심한 배우 중 한명입니다. 한때 TV를 켜기만 하면 김태희의 얼굴을 볼 수 있다고 할 정도로 많은 CF활동을 하였조. 그리고 그녀가 처음부터 외모와 연기력을 겸비했다면 좋았겠지만 한번 외모로 집중적인 관심을 받은 이상 항상 제의가 들어 오는 작품들은 그녀와 맞지 않았고, 연기에 대한 갈증이 생길 무렵에는 오히려 스스로가 더욱 맞지 않는 배역을 찾아 다녔습니다. 예를 들어 보면 최근에 양동근과 함께한 영화를 들어 볼 수 있겠네요.

황실재건이라는 다소 황당한 소재, 그리고 그 적통을 이은 후손 '이설'역을 김태희가 맡았는데요. 보신분들은 아시겠지만 김태희의 연기는 표정에서부터 달라져 있습니다. 표정 하나하나 발성 하나하나 이제 제대로 된 연기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또한 함께 연기하는 송승헌과 류수영, 박예진 이 네명의 케릭터 조합은 상당히 이상적이기까지 하고, 연기파 대배우 이신 이순재님까지 더해지니 드라마가 매우 풍성해 보이고, 참 잘 짜여진 환타지 로맨틱 코미디로 부족함이 없어 보입니다.

얼마전 '드림하이'라는 아이돌 드라마에 대한 리뷰 중에서, 연기파 배우의 비중이 너무 적고, 일부 배우가 있긴 하되 너무 가벼운 쪽으로만 흐르고 있다는 내용을 쓴 바 있는데, 이 글의 댓글로 아이돌드라마에서 중심을 잡아주는 중견배우가 왜 필요하냐라는 지적을 하는 분들이 있더군요. 이에 대해 필자의 생각은 무척이나 다릅니다. 그럴 수록 더욱 중견배우의 역할은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이조. '드림하이'가 초반 관심을 이어나가려면 극의 방향을 끌어가는 역할을 배용준 혼자 맡을게 아니라 중심을 지켜주는 연기파 배우가 투입되 극을 탄탄하게 만들어 가는게 좋아 보입니다. 대개 탄탄한 배우들이 중심을 잡아주면 톡톡 튀는 역의 주연배우들이 하이라이트를 받기 좋으니까요. 조금 이야기가 샜지만 다시 '마이프린세스'로 이야기를 돌려 보겠습니다.

1-2회, 첫방부터 지금까지의 줄거리.

아직 방송을 못 본 분들을 위해 현재까지의 줄거리를 적어보자면...
황실예복을 입고 재연하는 아르바이트를 하던 이설이 일을 마치고 퇴근하려 하자 송승헌은 나랏일이라며 국빈과의 사진촬영에 협조해달라고 하고, 10만원의 알바비를 준다는 말에 혹한 이설은 흔쾌히 응하게 됩니다. 이렇게 알게된 두사람은 우연처럼 계속해서 부딪히게 되는데, 이설이 다니는 대학교의 교수인 남정우(류수영)를 내심 좋아하고 있어 그가 좋아 한다는 사람이 오윤주(박예진) 임을 알게 되고, 새로 개관하는 해영박물관(관주가 오윤주) 에 가게 된 이설은 그곳에서 박해영(송승헌)과 다시 재회하게 됩니다.

한편, 박해영의 할아버지 이자 대한그룹의 회장인 박동재는 황실재건을 이루고자 하는 꿈을 갖고 있는데, 설정상 순종이 군자금으로 쓰려고 마련한 돈을 독립군에게 전달하던 역할을 맡던 박동재의 부친이 마지막 자금을 빼돌리게 되고 그돈으로 대한그룹을 일으킨 것에 대해 박동재는 죄책감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평생을 후손을 찾아 다니다 마침내 이설을 찾아내게 됩니다.


마이프린세스의 차별화는 황실재건의 주인공, 공주 역의 이설

윤은혜가 나와 히트친 드라마 '궁' 처럼, 가상의 판타지를 접목한 로맨틱코미디 '마이프린세스'는 등장하는 배우들의 면면이나 조합이 상당히 이상적입니다. 그래도 굳이 리스크를 찾자면 김태희가 소위 말하는 구멍이 될 수 있었고, 우려가 될 수 밖에 없었는데요. 돌연 그녀가 맞춤옷을 입은듯 기대 이상의 역할을 해주게 되자 부족함을 찾기 힘든 드라마가 되어 버렸습니다. 또한 주연배우들이 온통 요란하게 예능프로를 도배하며 광고한 것도 아닌데도 불구하고 1~2회의 스토리가 워낙 탄탄하게 시작한지라 이후의 시청률 역시 괜찮을 것으로 기대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아쉬운것은 박신양 주연의 '싸인'역시 상당히 흥미진진한 재미를 주고 있기 때문에 선택해야하는 것 자체가 고역이라고 할 정도로 두 드라마가 모두 재미 있다는 것입니다. '싸인' 이 아니었다면 '마이프린세스'는 최소 30%이상의 시청률을 기대해 볼 수 있다고 보기 때문에 더욱 아쉽습니다.

필자가 보기에 워낙 두 드라마가 박빙의 재미를 주기 때문에 시청률 역시 어느쪽도 압도적인 시청률을 내기는 힘들 것으로 생각되지만 그래도 그 가운데 가장 큰 수혜를 입는 것은 김태희가 아닐까 싶네요. 사랑스럽게 변모한 그녀를 재발견한 기분이 상당히 상쾌한 것은 저뿐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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