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정부 시리즈 03

Posted at 2007. 8. 13. 17:17// Posted in 시사 따라잡기

참여정부. 참 말 많고 탈 많은 정부로 남게 되었다.

노무현 대통령 개인으로 보아 아직도 난 그의 의지를 높이 산다. 하지만 결과를 무시할 수는 없는 것. 그의 의지와 그가 무엇을 바라보는지도 중요할 것이나 이제 참여정부는 그 끝을 향해 가고 있고 그과정에 여러 문제점이 불거지고 있는것이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오늘 이야기하고자 하는 정당정치의 문제점.

열린우리당의 출범때만해도 매우 의욕적이었다. 국민개혁신당이라고 했었던거 같은데, 유시민 전 복지부장관의 주도하에 정치적 열망을 담은 진보색채의 인터넷을 이용하는 적극적인 정치적 가담자들에게 대거 열풍을 일으켰었다.

하지만 열린우리당이라는 거대 정당이 출범한 이후로 여권내의 목소리가 나뉘는것을 염려하고, 개혁당이 비록 대단히 폭발적인 반응을 보이며 성장하였다고는 하나 여러가지 현 제도권 아래에서 그 잠재적 한계가 있었던 것을 인정하고 열린우리당에 흡수합병되어졌다.

그만큼 진보를 표방하는 인사들 뿐 아니라 중도를 추구한다고 하는 여러 인사들이 대거 열린우리당에서 국민적인 희망을 안고 새로운 세대르 열기 위한 날갯짓을 시작하였다.

하지만 출범 당시부터 염려했던 내무적인 문제점들이 하나둘 고개를 들면서 희망찬 시작은 그다지 오래가지 못하였다.

뭐 전문가랍시고 하는 많은 언론인들이 하는 이야기에 전혀 귀기울 필요가 없다. 그토록 한심한 정치인들보다 더 썪고, 더 어리석으며, 더 야만적이고, 더 지저분한게 언론이니까. 역겨울뿐이지.

언론은 여러가지 열린우리당의 문제를 지속적으로 제기 했는데, 워낙 쓰레기 기사들이었기 때문에 일일이 기억할 수는 없으나 본질에 가까운 내용은 없었다.

열린우리당의 가장큰 문제부터 내가 보는 시각하에 하나둘 짚어 보겠다.

첫째로 적절한 지도자상 찾기 실패, 그리고 그 대안자 부재.

노무현 대통령의 단점을 부각해서 보자면, 너무 낙관적이라는 것이다. 세상의 냉혹함을 잘 알면서도 어찌 그리 낭만적인 사고방식을 가지고 우직하게 가는지 알다가도 모를 사람이다. 그런 그가 여러 사건아닌 사건들을 일으키게 되는것은 그의 표현력에 문제였을뿐, 사실 정책적으로 크게 문제가 될만 한 사항들은 아니었다.

문제가 되는 것은 반대측 진영의 일부였을뿐, 대개의 국민들의 실생활 과는 그다지 관계 없는 것들이 많았다.

가장 대표적인것은 누누이 말하지만 근래에 재개정된 사학법이다. 이 사학법과 관련해 이야기 하고 싶은게 많은데, 참여정부 내내 사학법은 그 최첨단에 서서 참여정부의 골머리를 앓게 만들었던 주범이기 때문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열린우리당은 사학법을 지키지 못한 그것 자체로 실패한 정당이라 보아도 무방하다. 그 정치생명 내내 지키려고 했으나 결국은 여러 명분마저 모조리 빼았기고 힘에 달려 허덕대다가 재개정까지 갔으니 말이다.

사학법은 악법이 아니다. 일반국민 입장에서는 오히려 반겨야할 부분이다. 예를 들면  A라는 기업이 노사 분규가 발생하였을때 어느 일방적인 쪽의 잘못일 때도 있으나 대개 보면 양쪽 모두의 양보 없는 적대적인 시선과 적대덕인 대응이 문제일 때가 많다.

일반 국민들은 A라는 기업의 소비자층일뿐 사용자도 고용자도 아니다. 그러므로 대개는 어느쪽의 잘못을 따지기보다는 그런 일 자체가 벌어지지 않도록 했어야할 회사를 내심 꾸짖고, 저항운동이 너무 거쎄 언론에 너무 자주 언급이 되면 그때서야 너무 심하게 대응하는것 아니냐는 시선을 보내고 만다.
사학게 관련된 각종 단체의 억지주장들을 들어 보면 너무 가관이라 할알을 잃을때가 많다. 게다가 언론은 더욱더 쓰레기짓을 할때가 많아 언급하기조차 불편하다.

사학법의 개정자체를 논하자는 게 아니다. 출범 초기부터 민생사안부터 정치경제 전방위적인 여러 사안들이 해마다 자꾸만 늘어가는데, 사학법에 매달려 여 야 모두가 너무도 오래 소모적인 시간을 보내며 국민들을 농락하고 국민들에게 크나큰 손해를 끼쳤다.

여기서 잠시 외도하자면, 현 국회의원들 및 주요 정치인들은 옷벗고 물러나야 함이 마땅하다. 물론 감정적인 말이기는 하지만, 그만큼 죄가 크다. 많은 기회비용을 날렸고, 민생을 보살피지 못했다. 변명은 필요 없다. 결과가 말해준다.

노무현 대통령이 추진한 대개의 법들은 이 사학벅과 비슷한 절차를 밟아가며 여러 저항에 부딪힌다. 대개 기득권층및 찌라시 언론들과의 마찰이 많다. 

노무현 대통령은 그런면에서 다양한 사회구성원들의 화합을 이루어내지 못했다는 점에서 그의 한계과 그의 고민과 그의 방식을 알 수 있다. 즉, 그는 원하는 목표 하나를 어딕 위해 또다른 하나를 잃는 방식을 택했다.

그러나 만일 열린우리당에 노무현 대통령과 그 정치적 코드는 같으나 방식은 다르며 좀더 안정적이면서 좀더 대내외적인 커뮤니케이션에강한 인물이 있었다면 어땠을까.
 
난 열린우리당의 시작부터 김근태, 정동영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둘은 무언가 부족해 보였다. 선입견일 수도 편견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것 또한 정치적인 행동의 결과물이고, 그 해결은 본인의 의지와 행동에 달린것. 정 김 두살람은 그런면에서
이미 정치적인 상징성도 떨어졌고, 정책적 소임에 대한 열망도 현실적인 잠재적 대권주자로서의 행동만이 보일뿐 어떤 지도자상과는 시작부터 거리가 있어 보였다.

쉽게 말해 윈윈 할 수 있는 방향을 설정하고자 한다면 단점은 보완해주고 장점은 두배로 할 수 있는 그런 인사가 당의 중추가 되고 , 당원들을 독려하며, 당원들의 힘을 모아 강하게 배팅 할 수 있는 자여야 했다는 것이다.

지금이야 열린우리당 출신 정치인들의 쑈아닌 쑈를 보며, 조금은 당황스러울 정도이나, 사실 내심 애써 설마 이정도는 아닐꺼라고 생각해왔던게 사실이다. 하지만 근래의 모습은 실망의 정도를 넘어 오랜 기간 믿어준 동지들을 모두 외면하는 결과를 낳게 되었다. 현재 그들을 지지하는 이들이 얼마나 되려는가는 모르겠으나, 현실적인 이해관계가 엮어 있거나 하지 않는다면 대개는 볼썽 좋게 보진 않을 것이다.

왜 그럴까. 왜 그렇게 우와좌왕 할까. 결국 이렇게 될꺼였다면, 요 몇년간 의욕적으로 하려 했던 정치적 행위들은 다 무엇이었을까. 시작보다 중요한 끝을 이렇게 마무리 했을거라면 심정적으로 동조해주었던 지난 시절들이 너무 아까울 정도다.

정치인들은 모른다. 우리나라 국민들은 정치에 눈감고 귀막고 사는듯 보여도 굉장히 민감하다. 새로운 열망을 안고 출범했던 열린우리당이 정치적 행보에서 힘들어도 꾿꾿하게 갔더라면 앞으로 더욱더 힘든일이 있어도 잠재적인 지지와 더불어 조금더 나은 상황에 이르기까지 갈 수 있는 희망이 있었을 것이다.

열린우리당은 그러한 면에서 원죄를 갖게 되었다. 희망을 결집시켜야할 판에 다른 기회를 갖지 못하게 집권당이 되었으면서도 결국 쪼개지고 분열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서 당분간 정치적 희망을 접는 다수의 국민들을 양산해 버린 것이다.

그 여러 원인들 중에서 노무현 대통령과는 다른 방식의 지도자가 있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참 많이 든다.
아쉬운 인사로는 이해찬 전 총리가 있다. 그와 같이 능력이 걸출한 인사가 하필이면 방식면에서 노무현대통령과 엇비슷할 것은 무어냔 말이지. 차라리 정부내에서 칼같은 모습을 보일지라도 대외적으로는 안정적이고, 듬직한 모습으로 일관했었더라면 어땠을가 하는 아쉬움이 있다.

열린우리당 내에서는 무난한 인사가 몇 있었으나, 대개 그 능력이 뛰어나지 못하였고, 능력이 있는 자는 인망이 두텁지 못했으며, 열의가 있는 자는 방법론에서 약했다.

참여정부 초기의 그 수많은 코메디와 같은 상황들을 돌이켜 보면, 참 우리나라 정치는 갈길이 멀었구나 싶었다. 수많은 쇼를 보여주며, 국민드의 감정적인 대응을 원하고, 결과적으로 네거티브를 강조하여, 다시금 정치를 혐오하게 만들고, 물론 그 주범은 한나라당이다.

그런데, 참여정부 막판에 들어서는 열린우리당이 쇼를 보여준다. 쇼쇼쇼~ 쇼를 하라~~

결과적으로 상당히 이상한 사고 방식을 가지고 있는 한나라당 보다 더 못한 존재가 되어버린 게 바로 열린우리당이다. 존재가치를 잃어 버리지 않는게 중요하다는 것을 한나라당은 본능적으로 알고 있어 그동안 많은 뻘짓을 하고, 얼굴에 철판 둘러매고 별짓을 다했어도 그 선을 지켰던 반면에, 열린우리당은 그 존재이유를 망각하고 지키지 못했으므로 결과적으로 한나라당 보다 못한 존재가 되어버렸다. 존재이유를 망각했으니, 이렇게 분열이 되는것은 필연일 수 밖에 없다.

아쉬운것이 한두가지겠나. 수많은 보수언론들이 꼬집었던 코드인사는 문제꺼리가 아니다. 오히려 중요한 것인 인재풀이다. 참여정부와 코드가 맞아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이야기인데, 뭐가 문제냐 하냐면, 능력은 없는데 코드만 맞을 경우때문이다. 지금까지는 보수언론들의 이야기중에 맞는 것은 이것관련해서이다. 하지만, 코드가 안맞는데 능력이 있어도 불필요하다. 정책에 혼선만 야기할뿐이다. 이것이 보수언론의 주장의 허구다. 코드가 무슨 나쁜것인양 말하는데, 본질을 외면하고 있다.

여하간 중요한 인재풀에서, 열린우리당의 한계는 시작부터 힘들었던것이 맞다. 그리고 극복하려니 했는데, 결국은 지고 말았다. 그것도 아주 형편없이. 아주 지리멸절하게, 아주 처참하게.

희망에 차 출발하였던 열린우리당의 모습은 이제 기억속에 남게 되었다. 지금은 쪼개지고 분열되어 넝마와 같이 되어버린 존재가 되어 있을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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