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연주 전 KBS 전사장 무죄판결에 담긴 의미

정연주 전 KBS사장에 대해 무죄판결이 났다는 소식이 언론에 배포된 이후로 내가 기억하는 '정연주 사건' 에 대해 기억을 더듬어 보았는데 명확하지 않는 부분이 있었다. 내 기억속의 이 사건은 온통 '배임'에 초점미 맞추어진 언론보도가 많았기 때문인지 '해임사유'와 '해임과정' 자체에 대한 기억은 불분명 했던 것이다.

그래서 다시 한번 이 사건에 대한 기사를 검색해 보았는데 작년 11월 법원에서 '해임사유'와 '해임과정' 모두가 적법하지 못했다라는 판결 내용이 눈에 들어왔고 그제서야 내 뇌리속의 이 사건에 대한 기억이 정리가 되었다. 당시 서울행정법원 행정13부(정형식 부장판사)는 '정 전 사장의 해임결정을 취소한다"며 원고 일부 승소 판결을 내렸는데, 좀 더 자세히 들여다 보면 그 전 8월에 있었던 배임혐의에 대한 무죄 선고를 받았고 이어 해임절차 자체도 문제가 있었다는 것이다. 판결문을 보면 "해임 처분은 정연주 전 사장에게 사전 통지, 의견 제출, 소명 등의 기회를 주었다고 볼 만한 아무런 증거가 없다" 라고 위법성을 적시하고 있다. 또한 "정 전 사장에 대한 해임 처분의 법적 근거 및 구체적인 해임사유 등과 같은 이유를 전혀 제시하지 않았다. 이 또한 위법하다"라고 분명히 지적하고 있다.

법원은 감사원이 내세운 직무수행에 대한 해임사유에 대해서만 일부 인정하였으나 전적인 책임으로 볼 수 없고 해임사유로는 적절치 않다는 판단 또한 내렸다. 간단히 정리해보자면 감사원이 해임처리안을 내놓고 MB의 해임처리가 있기까지 적법한 과정은 없고 밀어부치기식 처리만 있었다는 이야기다.

배임건 무죄판결에 대해

정연주 전 사장에 대한 가장 핵심 이슈는 처음 이야기 한 바와 같이 '배임'에 대한 혐의였다.  사실 이 배임 혐의 자체가 어이없는 일이었는데 사건을 자세히 들여다 보면 법원이 조정을 권고한 셈이어서 검찰이 정연주씨에 대해 이 혐의를 두고 강하게 압박 하여 퇴임까지 하게 만들 것이라고는 미처 생각지 못한 일이었다. 이 당시 정 전 사장의 배임혐의에 대한 언론의 보도는 조금 뒤에서 다루기로 하고 일단 어떤 혐의였는지 간단하게 살펴보자.

KBS는 1999년 부터 2004년까지 부과받은 법인세 부분에 대해 국세청에 취소 소송을 내고 1심에서 승소한 이후 항소심이 진행되다 556억원을 환급받기로 조정에 합의 하자 이에 대해 회사가 1892억원의 손해를 입었다는 것이 이 사건의 핵심쟁점이었다. 이일은 누가 봐도 배임으로 보기 어려운 일이었는데도 무리한 기소를 강행한 검찰의 판단을 비판해야할 언론들이 오히려 하나같이 정연주씨의 죄인듯 보도하여 일반적인 사람들의 생각과 동떨어진 행태를 보여주었던 기억이 생생하게 난다.

언론들 부끄러워 해야할 이유

필자는 국민일보를 구독하고 있는데 대표적인 극우적인 논조를 가지고 있는 언론사이다. 이 신문의 특징은 여야를 막론하고 자신들이 사건을 바라보는 기준과 다르면 훈계를 하고, 비교적 그 기준이 극우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때문에 일부 사안에 대해서는 여당을 훈계하는 논조의 기사가 보이기도 하지만 대개는 우파적 시선으로 사안마다 야당의 정책을 강하게 질타하는 경우가 많다. 말로만 하면 와닿지 않을 테니 과거 그들이 '정연주' 사건 때 보도 했던 사설을 한번 보도록 하자.
 

사면초가다. 안으로는 노조와 사원들이 퇴진을 요구하고 있다. 이사회도 사장직 유지가 곤란하다는 입장이다. 밖에서는 검찰과 감사원이 불러도 콧방귀만 뀐다. 도대체 마이동풍이다. 스스로 무슨 삼별초라도 되는 양 막무가내로 버틴다. 정연주 KBS 사장 이야기다.

 지금까지 5차례 검찰 출두를 통보받았으나 한 차례도 응하지 않던 그가 이제 체포영장을 발부받아 강제로 구인당할 수도 있는 처지에 놓이게 된 것이다. 나라 입장에서는 망신이지만 모두 자업자득이다.

정 사장에게 선택의 여지는 많지 않다. 공영방송의 수장으로서 그나마 명예를 지키는 길은 더이상 늦기전에 스스로 물러나 자연인의 신분이 되는 것이다. 감사원의 해임건의와 KBS 이사회의 수용으로 강제퇴진을 당하기 이전에 사퇴하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다. 혹시 사법처리를 자초해 양심수적 지위를 유지하고 싶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그렇게 무리하게 개인의 뜻을 관철하는 동안 조직은 큰 상처를 받는다. 모든 허물을 안고 미련없이 떠나길 권한다. .

- 국민일보 2008년 8월 5일자 사설 中 발췌

[사설] 정연주 사장은 ‘마지막 명예’ 택하라
[사설] 정연주씨,제 치욕 모르고 남 탓하나

두번째 사설의 내용도 일부 발췌해보자. 아주 가관이다.

그가 처음 던진 말은 "8월5일은 감사원 치욕의 날"이었다. "지난 몇 달 동안 권력 기관들이 일사불란하게 KBS를 압박했다"며 불만을 표시했다.

자신의 치욕을 모르고 남을 향해 치욕을 말하는 모습이 딱했다. 본인으로 인해 회사 명예가 손상당한 데 대해 조직 수장으로서 최소한의 미안함과 책임 의식도 없었다.

자신의 거취에 관해서는 더욱 단호했다. 여기서 동원된 논리는 '공영방송의 독립성'이었다. '국민 여러분께 드리는 글'과 기자들과의 문답에서 그는 "KBS의 독립성 유지를 위해 사장 임기가 보장되어야 한다"는 종전 입장을 되풀이했다.

 그는 "좌가 됐건 우가 됐건 공영방송은 사회의 다양한 견해와 입장을 담아내는 용광로가 돼야 한다"고 말했다. 맞는 말이다. 그러나 그가 사장으로 있는 동안 KBS가 이 가치를 실천했다고 믿는 사람은 거의 없다. 탄핵 방송이나 촛불집회 등 여론이 분명하게 나뉘는 사안에서 극단적인 보도를 해놓고도 지금 다양성을 운위할 자격이 있는가.

정 사장의 시야는 편협했고, 논리는 궁색했다. 열변과 독설을 내뿜고, 때로 눈물을 보였지만 거기서 어떤 진정성도 발견하기 어려웠다.

- 국민일보 2008년 8월 6일자 사설 中 발췌


위의 사설에서 보듯 대개의 당시언론들의 보도행태는 대동소이 하였다. 해임사유와 과정의 적법성 보다는 정치적 색깔론을 들이대고 흔히 하는 수법인 '논란 거리가 되어 지탄을 받느니 빨리 거취를 결정하라'는 식의 이야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비단 국민일보 뿐이 아니고 여러 언론에서 정연주를 비난하는 기사를  보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돌이켜 보면 부끄러워해야할 일을 당연하다는 듯이 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런 기사로 온통 나라를 시끄럽게 한 이들의 행동이 불러온 사회적 논란은 누가 책임 질 것인지 궁금하다. 이일 이후 불과 1년후에 무죄1심판결이 났고 다시 또 1년만에 항소심마저도 무죄 판결이 났다. 그것도 과정과 사유 모두가 위법하여 의 사설과 같은 논조를 아주 무색하게 하는 판결문 내용을 담고 말이다.
 

맺음말

 공영방송인 KBS에 임기제도를 둔 것은 독립성-공정성-자율성을 보장하기 위함인데 일방적인 해임을 한 이후 KBS의 공정성에 대한 지적은 끊이질 않았다. 이일에 대한 책임을 감사원이 혹은 검찰이 혹은 MB측 어느쪽이 지게 될 것인지 궁금하다. 설마 아무런 책임지는 사람 없이 공영방송의 책임자 였던 사람을 물러나게 한 사건이 묻혀지고 말 것이라고는 믿고 싶지 않다.

이 사건은 정연주씨 개인의 정신적 사회적 피해도 막대하거니와 정치적으로도 워낙 상징성이 큰 사건이기 때문에 제대로 된 마무리가 있지 않는다면 MB정권의 가장 대표적인 부적절한 사례로 두고두고 회자될 가능성이 높다. 필자가 이 글을 쓰게 된 동기가 바로 이것이다. 어떻게 시작되었는지 보았고 그 중간 결과까지 보게 되었으니 시작과 마무리가 어떻게 완성되는지를 반드시 지켜보고 싶은 마음 때문이다.

덧) 무려 2시간 30분 가량 집중하여 쓴글이 Explorer 오류로 날려 먹고 다시 작성하는 글입니다. 티스토리의 가장 큰 장점인 저장기능마저도 오류를 내어버려 정말 눈물날뻔했네요;


@ 이 글이 마음에 드시면 아래 손바닥 클릭으로 추천해주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