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의 인터넷 문화는 상당히 왜곡되어 있다. 그것도 아주 심각하게!

손연재 선수에 대해 이야기 하기전에 아주 간단한 예를 하나 들어보자.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것은 인간 본연의 부정할 수 없는 본능이다. 그래서 멋지고 예쁘고 매력 넘치는 이성에게 끌리는 것은 아주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이것은 어떤 불평등한 이야기가 아니다. 인간의 본능을 부인하고 아니라고 하는게 오히려 더 부자연스럽다. 예쁘고 잘난 사람들이 부와 명예를 쥐는 것을 시기하거나 나쁘게 볼게 아니라 주어진 재능을 잘 활용하는걸 축하해주는게 맞다. 왜냐면 사람에게 주어지는 재능은 그렇게 다르게 타고 났다 하더라도 그것을 온전히 자기것으로 하고 행복을 지키는 몫은 자신에게 달려 있기 때문이다. 남들이 보기에는 좋은 재능을 타고 났어도 불행해 지는 경우는 얼마든지 있고, 아주 흔한 편이다.

 하지만 우리는 사회를 이루고 사는 인간이다. 따라서 우리가 신경써야할 부분은 이런 축 그렇지 못한 사람들 비하하는 경우를 경계해야 한다. 외모를 비하하는 어떠한 방송내용도 하지 말도록 해야 하고, 드라마를 비롯해 예능에서조차 분명하게 제어 되어야 한다. 키가 작거나 뚱뚱하다거나 하는 부분에 대해 언급하는 것 자체가 비난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

 필자가 경우 재벌드라마를 질색하는걸 넘어 혐오하는 수준인데, 전혀 현실적이지 않고 비정상적인 신데렐라 이야기는 외모지상주의와 물질만능주의가 만들어낸 아주 심히 경계해야할 대상이라 보기 때문이다, 과거의 잔인한 유산이라고도 할 수 있다. 그러니 당연 선진국에서는 비정상적인 재벌드라마가 존재하지 않는다. 종종 재벌 가문이 등장하기는 하나 비판하는 내용일 경우가 대부분이고 숫자 자체가 별로 없어 의미를 갖지 못할 정도다.

우리는 사람이 갖는 좋은 면을 부각시키는데 시기심을 갖지 말고, 비 정상적인 욕망을 부추키는 것을 경계하여야 하며, 나보다 못한 환경과 조건에 있는 사람을 비하하거나 외면하지 말아야 한다.

손연재 선수가 실력에 비해 과도한 관심을 받는다고 비난하는 사람들이 있다. 악플의 이유는 여러가지 곁다리가 붙어 숫자가 불어나 있지만, 귀결되는 결론은 결국 한가지다. 과도한 관심을 받을 만한 가치가 있는 선수냐는 것이다.

이런 마인드는 재벌드라마를 좋아 하는 것 만큼이나 황당하다. 예쁘고 재능 있고 노력하는 선수를 두고 시기하는 마음을 갖는다는 것 자체가 이상한 일이다.

미디어가 손연재 선수에게 과도한 관심을 가지는 것 자체가 불평등이라 보는 시각이 있다. 일종의 특혜로 보는 것인데, 이 또한 이치에 맞지 않는다.

인간은 기계적 평등을 추구하는 기계가 아니다. 비인기 종목선수에게 관심을 두자고 말하는 것은 스포츠 정신에 입각하여 공정한 기회를 주어야 할 때에도 그렇지 아니할 때 적용되는 것이지 항시 적용할 수 있는건 아니다. 예를 들어 당신이 야구를 좋아 하고 전국민적인 최고의 인기 종목이 야구인데, 왜 야구는 중게방송을 해주고 복싱 경기는 안해주는가 하고 따지는것과 같다. 방송의 한정된 시간을 고려하지 않은 떼쓰기라는 말이다. 또한 동등한 실력임에도 외모로 선수로 뽑힌다면 그것은 정상이 아니다

스포츠 종목으로서의 비인기 종목은 존중받아 마땅하고, 선수들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기계적인 평등을 주장하는 것은 말이 되질 않는다.

비인기 종목의 선수들이 처우를 개선할 생각을 하는것이 맞지, 인기 선수의 것을 뺏으려고 하거나 시기할 일이 아니라는 이야기다.

손연재 선수는 비인기 종목의 선수이면서 자신의 종목을 수면위로 끌어 올렸다. 김연아 선수 이후로 피겨계의 현실이 그다지 나아진점은 많지 않아 보이지만 꿈나무들은 늘어났고, 희망의 씨앗은 아직 시들지 않았다.

손연재 선수가 올림픽 챔피언이 아직 못되었다는게 그렇게 중요할까?

비판의 대상이 될 수 있는 경우라면, 동 종목내에 손연재 선수보다 뛰어난 실력을 가지고 있는데 기회를 못잡는 선수가 있을 경우다. 당연히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손연재 선수를 인정하게 된 계기

필자의 경우도 역시 인터넷의 여론과 마찬가지로 재능에 비해 언론의 관심을 많이 받는 다는 인상을 어느정도는 받고 있었는데, 그것을 굳이 글로 표현하거나 하진 않았다. 왜냐면 어느 한 시점에서 판단하기에는 아는것이 많지 않았기 때문이다.

비교하기 쉽게 1등 아니면 2등을 하고 있는 시점에서 어떤 선수를 알게 되었다면 굳이 시점을 따질 필요가 없겠지만, 세계 대회에서 10위권 한번 들어가 본 적이 없는 선수였기에 어떤 판단을 내리기 어려웠다. 그렇다면 추이를 살펴보는게 맞다고 생각했다.

보는 사람이 답답발 정도로 느리게 순위가 올랐다. 악플이 심할 때는 이런 정체구간이 있을 때였다. 선수 생명이 유난이 쌃은 리듬체조라는걸 감안하면 언제 메달 한번 따보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런데, 손연재 선수는 주어진 기회를 잡을 줄 아는 의지와 실력 그리고 노력이 있었다. 러시아 선수의 탁월한 신체적 조건을 극복하기 어렵다는걸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좌절 할 만도 한데, 일부 악플이 있다는걸 알면서도 꾸준히 노력해서 약점으로 지적되었던 곤봉도 훌륭히 연기할 수 있게 되었다.

필자가 손연재 선수의 곤봉 연기를 처음 보았을 때 이렇게 생각했다. 물론 외부로 발설한건 아니고 속으로 '세계적 선수들은 저 나이에 이미 약점이 없아 갖출거 다 갖추고 있었고, 저 나이때에 가능성을 보는게 아니라 이미 챔피언을 하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니 손연재 선수에게 기대를 접지는 않겠지만 지나치게 큰 기대를 해선 안되겠구나' 라고 내심 생각했다.

그런데 순위가 10위권 쪽으로 조금만 접근해도 미디어는 늘 반응했다. 이런 모습이 조금은 과한 현상 아니냐는 시각을 가질 수 있다. 필자 역시 일부 그런면이 있었으니까.

그래도 기준이 있었던 것은 추이를 지켜보자는 부분이었다. 손연재 선수는 꾸준히 노력했고, 드디어 메달을 획득하기 시작했다.

스포츠 선수는 정신력이 매우 중요하다. 후천적으로 키워지는 부분과 선천적인 부분이 결합되어 정신력을 이루는데 세계랭킹은 높은데 큰 대회에서 종종 실수하거나하는 것도 이런 부분과 맞닿아 있으며, 대부분의 훈련 받은 선수들조차 엉덩방아를 찢으며 큰 실수를 하면 거의 예외 없이 이후의 경기를 망치고 만다. 심리라는게 이렇게나 사람의 육체에 지대한 영향을 준다.

손연재 선수가 노력하여 차근차근 실력을 높여가고, 한때 곤봉에서의 불안감이 높았고 극복하기 어렵지 않나 하는 시선을 이겨내고 결국 훌륭한 곤봉실력을 갖추게 되었으니 손연재 선수는 단지 어리고 예쁜 실력 좀 좋은 선수가 아니라 자신이 단점마저도 극복해낸 용기 있는 선수가 되었다. 필자가 한때 살짝 회의적이었던 이유는 이렇게 극복해 내는 선수가 거의 없기 때문이다. 말처럼 쉽지 않고 상상하는 것만큼 간단치 않다.

운동센스가 좋고 파워가 좋으며 운까지 따라서줘서 승승장구하던 A라는 권투선수가 동급의 실력자를 만나 고전을 했는데, 그 경기를 통해 A의 장단점이 상당수 파악이 되어 버렸다. 그런데 문제로 지적되었지만 본인은 그런줄도 모르고 장기간 안좋은 습관을 길러왔다면 다시 그것을 없던것으로 돌리기 위해서는 상당한 시일이 필요하게 된다. 그리고 끝내 극복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문제로 지적된 습관을 개선하려다 기존에 갖고 있던 장점마저 잃어버리고 이도저도 안되는 선수들도 많다.

손연재는 부정적 시각속에서 꾸준히 실력을 쌓아 나갔고, 국제 대회에서 입상하는 횟수가 늘어났다. 비인기 종목에서 의지도 있고 노력도 하는 멋진 선수가 등장한 것이다. 굳이 1위가 아니어도 충분히 존중받을 만한 매력적인 선수가 되었다. 그리고 마침내 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앞으로는 악플 보다는 선플을 달아 보는건 어떨 까 하는 제안을 해보며 글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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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4.10.09 08:01 신고 [Edit/Del] [Reply]
    그러고보면 인간이란 동물이 참 추접스러울 때가 많습니다.
    물론 소수겠지만....박수에 너무 인색한 요즘이 아닌가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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