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무성은 516을 혁명이라 말했다. 매우 심각한 위험수위의 발언이 아닐 수 없다. 인터넷 커뮤니티의 어느 구석의 댓글 정도라면 나무랄 수 없는 어떤 한 사람으로서의 의견이라 볼 수도 있지만 비중있는 정치인의 입에서 나올말은 아니다. 쿠데타가 정당했다고 보는 시각이 곧 혁명이라 미화 하는것인데, 이는 곧 민주주의를 부정하는것과 동일한 의미를 가진다.

민주주의는 국민이 곧 국가의 주인임을 뜻하는데, 총포와 군화발로 정권을 차지했으니 곧 민주주의를 정면으로 거스른 행위라 하겠다. 

필자는 근래 정치관련한 이야기를 잘 쓰지 않는다. 허공에 메아리와 같이 보는 이도 별로 없지만 호응하는 이가 적기 때문이다.

한국정치는 정치인들 뿐 아니라 국민들의 의식도 매우 낮다. 듣기 불편한 이야기 일 수 있지만 일본과 흡사하다. 모든 면은 아닐지라도 상당부분은 비슷하게 흘러간다. 한국보다 십여년 이상 부동산 거품이 꺼지는 과정을 먼나라도 아니고 가까운 일본에서 일어나는걸 뻔히 목격하였음에도 이명박은 뉴타운 정책을 펴며 서울시와 경기도의 국민들의 삶을 매우 고단하게 만들었다. 이런 자들이 백년대계를 입에 답는걸 보면 욕지기가 나오지 않을 수 없다.

특히 부동산을 잘 아는 전문가들은 더욱 역겹기 그지 없다. 인구가 많지 않던 시절에도 나름대로의 이유로 비싼땅들이 있었다. 예컨데 교통이 발달하고 물자가 모이는 곳이라면 당연히 그곳의 땅값은 비쌀 것인데, 고래로부터 변치 않는 사실일 것이다. 현대로 들어와 폭발적인 인구 증가, 아프리카-신흥4대 개발도상국 등 개발과 발전을 도모하는 과정속에 땅의 희소성이 더욱 중요성을 가지게 되었다. 주식 이론 중에 파동이론처럼 세상일에는 싸이클이 있고, 부동산도 예외는 아니다. 천정부지로 끝없이 오를 일은 없고, 정반합의 이치또한 생각해 볼 일이다.

그런데 지나간 일이니 당시 세계경제가 다 그러했다고 덮으려고 하지만 사실 그렇게만 말할 수는 없는게 앞서 말한바대로 뼈저리게 아픈 상황을 겪고 있던 일본이 있었고, 베이비부머 세대라는 세계사에 공통된 분모또한 있었으며, 영국이나 미국처럼 금융자본의 힘이 나라를 휘두를 정도의 악조건(당시는 선진금융기법이라 미화) 또한 아니었으니 세계 부동산 시장이 크게 요동친다고 해도 대란까지는 오지 않게 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뉴타운을 비롯해 부동산 거품을 가속화 하는 정책이 힘을 받게 된건 바로 국민들의 바른 미래 보다는 눈앞의 이득에 함몰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니 일방적인 정책입안자들의 잘못이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노무현정부시절에 부동산을 억제하려고 아무리 노력해도 통하지 않았던 것은 세계시장의 흐름을 간파한 사람들이 보이지 않는 곳에서 거품을 조장하고 이득을 보려 했기 때문이다.

필자가 지금 하려 하는 말은 바른 역사의 교훈을 외면하고자 하는 비겁함을 탓하기 위함이다. 사람들 앞에 나서서 선동하는 이들은 대개 아무런 목적없이 그러하지 않기 마련인데, 뉴타운으로 서울이 대단히 멋진 도시로 재탄생할것처럼 말하고, 4대강 사업의 정당성을 역설한 자들도, 여러 지방자치단체들의 무리한 역점사업들이 대개 부실하거나 왜곡된 자료를 바탕으로 사업이 설계되어 그 막대한 후유증이 도저히 감당할 수준이 아닐만큼 커진 지금 현상황에서도 사람들은 바른 시선을 가지려 하지 않는다.

왜 그럴까. 그것은 바른 생각과 행동으로 승리한 경험이 적기 때문이다. 대통령은 욕하면서 내가 사는 지역의 문제는 여당이 더 잘 해결해 줄것으로 믿는 사람들이 많은 이유는 박정희가 그러한 이미지를 만들어 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부정부패를 아랑곳 하지 않고 내 이득에만 관심있는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다는 이야기다. 보다 바르고 가치관이 뚜렷한 인물이 집권해야 내가 겪고 있는 어려움이나 내 주변 내 가족 내이웃이 모두 좋아진다는 것을 겪어본 적이 없으니 막연히 더 힘있는 사람이 더 잘 해결해줄 것으로 생각한다.

과거에도 여러차례 언급한적이 있지만 뉴타운을 입안 한 자들과 지지세력이 당시 총선때 한나라당 의원들을 압도적인 숫자로 당선시켰다. 그런데 다음 총선에서 그들은 다시 뉴타운을 잘 해결하겠다고 해서 또 당선되었다. 지지세력을 외면하는 정치인이 과연 있을까? 지지세력이 뉴타운을 하는쪽인데?

한국사회는 이렇게 조금의 생각도 하지 않고 힘있는 사람이 더 잘 해줄것이라는 막연함속에서 투표를 해왔다.

박정희를 미화하는 것도 마찬가지. 쿠데타를 통해 나라를 잘 살게 해주었다는 주장을 한다. 사람이 사람이라서 벗어날 수 없는 부분들이 있는데, 박정희을 우상시 하는 자들은 그를 마치 이런 인간의 범주에 놓지 않고 신의 반열로 생각하는 것 같기도 하다.

합리적인 논거와 의견은 받아 들이지 않으려 하고, 믿고 싶은데로 믿으려 한다. 물론 나의 생각과 타인의 생각이 같기를 바라는 것은 무리 일 수 있으나 그 편향의 정도가 지나치면 그것은 위험한 일이라 말하지 않을 수 없다. 특히 쿠데타를 혁명이라 미화 하는 김무성 같은 사람이 정치인이라는 사실은 참 부끄러운 일이다.

박정희의 공과 중 공을 더 우선시 하는 자라 해도 할 수 없는 말을 김무성은 하고 있다. 그는 정치인의 자격이 없다. 민주주의를 부정하는 발언을 했기 때문이다.

부동산 거품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당시에 적지 않았음에도 사람들은 맹목적으로 이익을 쫒아 달려갔다. 바른 목소리는 통하지 않았다. 또한 알면서도 이용하려는 사람들이 적지 않았다. '나만 아니면 돼' 라는 인식이 팽배했다.

4대강 사업 역시 유사한 경험을 한 세게적 석학들이 경고의 메시지를 전해왔음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시행했다.

서울시환승시스템에 대해서도 짧게 한마디 하자. 이명박과 오세훈 서울 시장이 연이어 시정을 맡고 있었을 때 유일하게 반대파도 인정하는게 바로 이 환승시스템인데, 처음에는 신기해 하다 오히려 어느정도 시일이 흐르자 자연스럽게 대부분의 반응이 일치되어 나타나기 시작했다.

반대파는 이렇게 생각하고 말할 것이다. 이명박-오세훈 시장의 대부분의 정책이 다 실패했지만 버스환승은 잘 만들었고, 아마 얻어걸린걸꺼라고. 찬성파는 대부분 무난하게 서울시를 발전시켰고, 새빛둥둥섬, 디자인서울, 환승시스템, 청계천 등 역점사업을 성공시켰다라고 말할 것이다.

이말은 합리적 판단에 의해 인정해야할 부분은 거스르지 않아야 하는데, 그 조차도 외면하고 싶은 심리가 통하는 사회가 한국사회라는 이야기를 하고 싶기 때문이다.

4대강 사업의 불합리성은 일일이 열거하기 조차 힘겨울 정도로 많다. 하나부터 열까지 거의 대부분이 그러하였음에도 강행되었다. 필자가 생각하는 가장 합리적인 방법은 반대파의 의견을 존중한다면 4대강 중에서 한 곳에서 먼저 시작하여 길게 보고 장단점을 취합하여 나가되 부족한 점이 있으면 보완하고, 아니될것 같으면 과감히 손떼자는 것이었는데, 이는 4대강이 아니더라로 치수사업은 모든 곳에서 매년 하고 있는 일이기 때문에 동시에 시행 할 필요가 없고, 만일 잘못되면 철거비용이 크게 들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합리적 목소리가 통하지 않는 정치인과 국민들이 살아가고 있는 이 시대라면 필자가 할 수 있는 정치관련 이야기는 많지 않다.

입만 아프다는 말이 괜한게 아니며, 정치에 대해 무관심한 사람들을 깨우려 했던 지난날이 이렇게 허무할 수가 없다. 이웃 일본에서 아베정권이 일본의 침략을 미화 하고 신사참배를 강행하며 위안부 문제에 대해 낮짝 두껍게 행동할 수 있는 가장 큰 이유는 한국의 상황과 비슷하기 때문이다.

국민들은 정치에 대해 관심이 없고, 오로지 이득과 관련된 사람들의 뜻대로 흘러가고 있다. 따라서 누군가 총대를 메고 앞에 나가 주장을 하면 우루루 따라가게 되고, 독립적인 생각과 합리적 판단은 머나먼 나라의 이야기가 되어 버린다.

일베라는 공간에서 상상력을 바탕으로 지식전파에 나서는 사람들의 특징은 한결같이 믿고 싶은데로 보고 판단하고 말한다는 것인데, 그게 또 다른 이용자에게 아이디어를 제공하여 괴상한 논리가 확대 재생산 된다.

이쯤 되면 합리적 역사관이나 정치관은 설자리가 없고, 누가 더 상상이론을 잘 펴는지가 중요하게 되어 버렸다고해도 지나친 말은 아닐듯 싶다.

보수파를 지지하는 사람들은 대개 이승만과 박정희를 동시에 추앙하는데 이것도 좀 우스운 일이다. 사실 516이 419세력을 밀어내긴 했지만 그 이유는 분명 개혁의 미진함 때문이라 했고, 그렇다면 결국 그 개혁의 대상은 이승만의 자유당 정권 아니던가.

태생이 다르고 적대덕 관계나 다름 없는데 나란히 추종하는 무리들을 보면 조금 한심스럽기가지 하다. 당시의 상황을 교묘하게 짜집기 해서 419세력을 적대세력으로 몰아냈다고만 말하고 싶을지 모르나 그런 명분으로는 516은 시도조차 할 수 없었을 것이다. 분명 자유당정권의 잔재를 뿌리뽑는게 가장 쿠데타에 참가하는 장군들의 가장 큰 의지였을 것임은 자명하지 않은가. 박정희와 뜻을 함께한 장군들은 상당수 편법이자 잘못된 판단이기는 했어도 본래 의도 자체는 이해할 수 있는데, 단지 그걸 결행한 일은 분명 잘못된 일이며, 이를 미화 해서는 아니된다.

민주주의는 국민의 뜻에 따르지 않고 집권하는걸 용납해서는 존재할 수 없다. 그걸 인정 하는 사람이 정치인을 하고 있는 이 시대는 참으로 어둡다 하지 않을 수 없다.

한국의 보수가 바로 서려면 박정희의 공과 중 공을 더 높게 쳐준다 할지라도 쿠데타를 혁명이라 말하지 않을 수 있는 합리적인 보수가 다수를 차지해야 가능할 것이며, 그런 사회가 올바른 민주주의가 바로 잡힌 나라로 발전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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