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답하라 1994에 등장하는 많은 소품과 장치들은 당시의 시대상을 반영하고 있습니다. 응답하라1997에서도 그랬지만 수박 겉핡기 식이 아니라 대사 한마디 한마디에 정말 리얼한 느낌을 제대로 살리고 있죠.

쓰레기가 여자친구에게 차인 이유였던 노란머리는 많은 것들을 상징하고 있습니다.

필자가 중고등학교를 다닐 때 학생회장 선거를 하면 항상 빼놓지 않고 등장했던 공약은 다른 아닌 <남여합반> <모발규정> 이 두가지였는데요.

 지금도 크게 달라지진 않은것 같긴 한데 그 때에는 중학교까진 남여공학이 많았지만 고등학교는 남자학교 여자학교 아주 확연히 갈라져 있었습니다. 중학교 학생회장 선거에 이쁘장하고 공부 잘하는 여학생이 짧은치마를 입고 홍보하러 다니니 큰 화제가 되면서 당선되더군요. 요즘이야 짧은치마가 화제가 될리가 없겠지만 말이죠.(물론 지금기준으론 짧은치마라고 할 수 없겠죠) 고등학교에선 자매결연한 일본 고교 학생들이 방문했을 때 짧은치마에 친구들이 놀라워 하던 기억이 선명하게 납니다.

모발규정이라고 하면 여자아이들은 단발머리까지 허용되고, 남자아이들은 학교에 따라 조금씩 다르지만 스포츠머리까지가 허용되었습니다. 필자의 경우 백년가까이 되는 전통이 있는 사립고교여서 그런지 이웃한 고등학교 보다 더욱 이 모발규정이 강했습니다. 중학생 때는 체육선생님이 머리가 길다며 옆머리와 뒷머리를 바리깡으로 계단식 커트해 버리는 바람에 집에 가는 내내 그리고 그 이후 한동안 정말 챙피해 했던 기억이 납니다.

이렇게 보수적인 사회적 분위기가 바뀌어 갔던 것은 뭐니뭐니해도 직선제로 바뀐 이후에 서서히 변해가던 사회적 분위기가 문민정부들어 드디어 문화적 개방이 이뤄지면서 부터 였을 것입니다. 이걸 바꿔 말하면 군사독재 시대에는 사회 문화적으로 매우 폐쇠적이었고, 한꺼번에 빗장이 풀리다 보니 많은 변화가 찾아오게 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노랑머리이재은 주연의 영화 노랑머리의 한장면

 

네이버뉴스라이브러리의 노란머리 기사중 룰라에 대한 이야기

노란머리 문화적 갈등의 표출

 서태지와 아이들이 교실이데아를 노래하며, 저작권법에 대항해 사회적 이슈를 불러 일으키며 큰 인기를 얻었던데에는 이런 문화적 변화의 흐름을 대표하고 있다는 의미도 담겨 있습니다.

보수라는 의미는 지금의 것을 지키고자 하는 것인데, 노란 머리는 변화의 첨단을 상징하며 보수적 심리에 저항감을 불러 일으켰죠.

예를 들어 이런 심리입니다.

"세상에 변하는 것도 정도가 있지. 양놈이냐"

즉, 기성세대 입장에서 보면 해도 너무한다라는 의식이 깔려 있습니다. 응답하라1994에서 이일화나 성동일 같은 부모는 그리 많지 않았다고 보면 되겠습니다. 대개는 이렇게 반응했을 것입니다.

"남사스럽게 여자애가 노란머리가 뭐다냐" 라고 말이죠.

이건 어느정도 변화를 받아들이는 층에서도 한동안은 온전히 받아들이기 힘든 충격이었습니다.

 

 

 

삐삐와 이성교제

응답하라1994에서 등장하는 주요 소품 중 하나인 삐삐는 사실 당시에 이미 어느정도 유행의 정점에 있었습니다. 그보다 더 먼저 서비스 되고 있었다가 드라마의 배경이 되는 시점부터 폭발적으로 이용이 늘어나고 있었던 것이죠. 응사가 놀라운건 바로 이런 시점적인 부분에서도 정확하다는 것입니다. 당연히 삐삐를 사용하고 있는 것으로 표현되지 않고 이제 막 쓰레기가 사용법을 익히는 모습은 정확히 그 시대상에 걸맞는다고 하겠습니다.

오늘날로 비유하면 스마트폰이 처음 나온 시기가 아니라 아이폰이 국내에 판매되고 몇개월 후쯤이라 생각하면 됩니다. 스마트폰이 이용자가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있지만 2013년의 지금처럼 완전히 대중화되기 직전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삐삐 등장 이전에는 가요 가사집 혹은 연예잡지 뒷면의 펜팔이나 친구의 친구를 소개 받는 소개팅, 그리고 롤러장 등이 이성교제의 창구역할을 했었습니다. 그런데 삐삐가 등장하면서 부터는 소개부터 교제까지 이 삐삐가 주요 통신수단으로 바뀌면서 엄청난 돌풍을 일으켰죠.

무선호출기의 기계음에서 비롯된 별칭인 '삐삐'는 1983년 첫 등장했습니다. 필자의 기억으로는 1991년경부터 학생들 사이에 유행이 시작되었고 응답하라1994에선 앞서 말한바대로 폭발적으로 이용자가 증가했습니다. 당시 삐삐 사용자 중에서 숫자 약어인 1004 나 8282 를 기억못하는 분들은 없으시겠죠.

* 요즘 가끔가다 보는 미드에서, 그리고 한국의 의학드라마에서 삐삐가 보이는데 실제 특정 분야에 한정적으로 사용되고 있다.

* 당시 최고의 삐삐 브랜드는 모토로라 였다.

참 신기한게 당시 최고의 브랜드는 모토로라였는데, 삐삐 이후에는 그런 브랜드의 위상이 점점 하락했고, 화무십일홍이란 말처럼 모토로라는 휴대폰 '스타텍' 흥행 이후로 점점 하락세를 타게 됩니다.

노랑머리와 삐삐

이 둘은 젊은세대만의 전유물은 아니라고 할 수 있지만 처음 도입시 젊은세대가 가장 먼저 받아들이고 사회적 이슈가 되었으며, 나중에는 보편화가 된 머리염색과 통신수단의 혁명을 상징하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한국사회의 문화는 앞으로 계속해서 나아가겠지만 응답하라1994의 20살이 오늘날 39세가 되었듯이 지금의 20대 역시 19년이 지나 지금처럼 응답하라2013이 나오면 어떤 추억의 장치가 사용될까라는 재밌는 상상을 해보며 글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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