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새누리당 대선경선후보가 신문방송편집인협회 초청 토론회에서 516군사 쿠데타를 불가피한 선택 쯤으로 이야기 하며 미화 했다. 경악하지 않을 수 없는 주장이다. 지난 2007년엔 '구국의 혁명'으로 규정한 바 있는데 이번에 다시 한번 반복함으로서 어떤 역사관을 갖고 있는지 만천하에 확인시켜준 셈이다.

박정희 군사쿠테타는 시작부터 실패작이라 할 수 있다. 군사 쿠테타가 아닌 민주적 방법으로 고도 경제발전 시기를 극복해 나가야 했다. 그럼 왜 실패작인가?

필자가 아는한 군인이 힘으로 집권한 이후 스스로의 의지로 권력을 내려놓은 예는 없다. 간혹 자신의 뜻을 잇는 후계자가 권력을 이어받는 꼼수는 있으나 단발성에 그치고 만다. 필연적으로 독재자의 말로는 불행할 수 밖에 없다는 말이고 그런 결과는 역사적으로도 실패한 정권이었음을 반증한다. 리비아의 카다피는 그 대표적 예일 뿐이지 근대 이후 수 많은 나라에서 군사정권은 발호 하였고 예외 없이 결과는 좋지 못하였다. 왜 그랬을까?

박정희가 516 군사 쿠데타를 일으켜 정권을 잡았을 때 한국은 2차산업이 부흥하려 하고 있었다. 박정희는 빠른 근대화를 위해 다른 비용은 기꺼이 지불해야 하는 것으로 간주했다. 당시 우리나라 국민들은 일제시대와 한국전쟁을 거치고 민주주의가 들어선 이후 가난을 탈피하고 삶의 질의 향상을 위해 피땀흘려 노력했다. 그것은 고도의 경제성장을 추구하는 박정희의 통제정책과 맞물려 시너지효과를 내었다. 하지만 그런 효과는 1차산업에 머물러 있던 한국경제가 중공업과 수출산업 육성의 단계까지로 제한된다.

독재정권의 강력한 통제경제체제는 많은 희생을 치루어 가면서도 강력한 드라이브를 걸 수 있는 원동력이었다. 예를 들어 10년에 이루어야할 경제성장효과를 5년내에 이루었다고 하면 그 효과는 굉장한 것으로 비쳐질 수 있다. 그러나 지속될 수 없는 단기간의 통제경제체제하에 만들어진 빠른 경제 발전 속도와 기형적 경제구조는 결국 수십년에 걸친 후유증을 남기게 된다.

압축성장의 효과는 박정희 정권 수년간에 불과, 후유증은 수십년
군사정권의 특성상 스스로 물러나지 않는다.
박정희식 경제발전은 지속불가능

핵심이 이것이다. 군사정권이 정당성을 얻기도 어렵지만 설혹 경제적 성공을 모든 것을 덮을 정도의 성과로 기록될 수 있으려면 그 성공이 지속적이어야 하는데 통제경제체제의 효과는 지속적일 수 없다. 이건 부정의 여지가 전혀 없는 일인데도 한국사람들은 막연히 박정희의 경제정책은 성공적이었다고 기억한다. 이미 박정희 정권 후기인 70년대 말에 공업화 도시화 등으로 더이상 통제정책이 먹혀들던 시기는 지나가고 있었지만 박정희는 그 변화를 받아 들이기믄 커녕 통제를 강화 하려 했고 가로막는 이들은 거침없이 희생시켜가며 3선개헌으로 영구집권의 야욕을 드러내기까지 했다. 비 정상적으로 잡은 정권을 정상적으로 내려놓는 다는건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역사적 사례의 한페이지를 박정희가 장식하고 있는 셈이다.

강요당한 희생은 그저 잠재되어 있다가 흐트러져 사라지는게 아니다. 왜냐면 그 희생이 반복되기 때문이다. 반복되는 희생은 민주화의 열망을 불러 일으켰다.

박정희 사후에도 선 성장 후 분배의 기조는 이어졌다. 박정희의 그림자는 오랬동안 한국사회를 지배 했다. 그러나 박정희 군사 정권 시대 뿐 아니라 얼마전까지도 경제적 이득은 주로 대기업과 토지소유자에게 집중되었다.

독재 17(1963~79년)년간 땅값은 엄청나게 상승했다. 이 부분을 국민들을 잘 기억하지 못한다. 통계적으로 알려진 바도 적거니와 경제발전 속도의 혜택을 일부분이라도 맛본 이들은 그 공을 모두 박정희에게 돌리기 바빴다. 그러나 실제로는 17년 중 지가상승이 50%가 넘은 해가 4년이나 있었고 그 기간 지가는 총 180배가 뛰었다. 한국의 경제발전속도를 크게 웃도는 이 지가 상승으로 인한 불로소득은 주로 동네 유지정도가 아닌 엄청난 부자들에게 집중되었다. 정경유착으로 부자와 권력층은 미리 개발정보를 입수하여 땅을 사놓고 땅짚고 헤엄지치식의 불합리한 이득을 취했으며 결국 군사정권 내내 전국에 공구리를 친 대통령에 의해 부의 쏠림 현상은 가속화 되었다.

박정희는 군사정권 중 경제발전의 파이를 부유층과 권력층이 대부분 가져가게 만든 장본인이다. 박정희 집권기간 중 경제발전의 효과가 극히 일부분만이 일반 국민에게 돌아왔음에도 그를 찬양하는것은 비상식적이다.

여기서 두번째 이유가 등장한다. 통제경제정책을 위해서 재벌을 선택 육성하고 그 재벌을 통해 통제하려던 군사정권은 필연적으로 부패하게 되어 있다. 드라마 '무신'을 본 사람들은 '최우'와 '김준'의 뜻을 쳐다볼지 모르지만 역사적 진실은 그들이 일어난 뜻은 그저 명분에 불과할 뿐 힘으로 일어난 무신정권 시기의 열명이 넘는 집정자들은 대개 그 끝이 방탕하고 부패하여 대부분 피살되고 해침을 당해 물러나야 했다.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견제 없는 독재와 그 독재에 빌 붙어 이득을 취하는 무리들은 필연적으로 부패하게 된다.

또한 통제경제체제는 그 파탄을 반드시 드러내게 되어 있다. 사람은 본래 고생할 때는 손에 몇푼 쥘 수 있는것에 만족하고 정당한 내몫을 받는지 아닌지도 모르고 관심둘 여유도 없지만 세월이 지나 다시 불합리한 환경으로 돌아가거나 잘못이 반복된다는 것을 견딜 수 없어 하게 되어 있다. 쥐어짜듯 희생을 강요하고 그 희생을 바탕으로 경제발전을 했는데 다시 그 희생을 하라고 하면 제 아무리 실상을 잘 모르는 국민들이라 할지라도 견딜수 없어 하게 되고 필연적으로 통제경제체제는 지속될 수 없게 된다.

박정희 군사정권때에 지가와 물가는 엄청난 상승을 했다. 지금으로서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라 하겠다. 물가상승의 압박을 희석시킨건 저축으로 인한 이율이었고 한국사회는 배고픔을 견뎌 가면서도 저축을 해서 미래의 부자가 되려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이상으로 박정희 군사 쿠데타가 시작부터 실패일 수 밖에 없는 근본적인 이유 두가지를 짚어보았다. 앞으로 박정희에 대한 이야기는 기회가 닿을때마다 조금씩 풀어나갈 것이다. 독재정권을 미화 하는 독재자의 딸이 대선에 나선다는 현실이 너무나 안타깝다. 과거사를 반성하지 않는 일본과 다를 바 없는것 아니냐는 생각도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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