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신, 딸마저 죽음 내몬 최우 비정한 권력 현대 정서엔 안 맞아

누들로드와 도자기라는 다큐멘터리를 보며 깊은 감명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은 국수와 도자기라는 문명의 소산이 수백년에 걸쳐 역사의 흐름에 어떻게 관여 했는지를 지켜보며 공감할 수 있었기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한편 역사를 다룬 드라마는 당시의 왕조를 중심으로 풀어내든 아니면 시대를 가로 지르는 주변의 어떤 인물을 중심으로 풀어내든 현대인들의 공감을 얻을 수 있어야 합니다. '누들로드' '도자기'와 같은 다큐와 드라마 '무신'이 다를 수 밖에 없고 달라야 하는 이유입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가장 널리 읽힌 소설 중 으뜸은 아마도 '삼국지'일 것인데 이 삼국지에 등장하는 인물에 대한 해석도 백년전이 다르고 수백년전이 다릅니다. 과거에는 유비를 으뜸으로 치고 조조를 효웅으로만 다루고 심지어 간악한 자로 표현하기도 하였으나 이제는 조조라는 인물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담은 드라마나 영화 혹은 관련 저작물들이 넘쳐 나고 있조.

과거 무신이 고려의 정권을 잡고 나라를 좌지우지 하던 시절 전체기간 중 중간을 조금 넘은 시점, 즉 중기 무신정권의 권력을 잡은게 최우였고 이후 김준이 도방의 최고권력자가 되어 10년정도의 집권시기를 갖게 되는 과정을 그린게 드라마 '무신'입니다. 무신정권 기간동안 집권한 인물 중 가장 중요한 인물이 바로 최충헌이고 그 다음이 최우라고 할 수 있고 최우가 강화도로 궁을 이전하고 몽고와의 항전을 30년 가량 한 이후 얼마 못가 무신정권은 그 생명을 다하게 됩니다. 

드라마에서 최우가 김약선을 죽이고 딸인 송이마저 죽음에 내몰게 되는 과정은 권력의 비정함을 다루고 있다는 측면에서는 적절한 장치요 적절한 전개라 할 수 있지만 그 원인과 결과로 이어지는 김준의 이야기까지 포함해 생각하면 현대적 정서와는 그리 맞지 않는다고 보는게 필자의 견해이며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를 이야기 하기 위해 이 글을 쓰고 있습니다.


"현대적 정서에 맞지 않는 주인공 케릭터 '김준'"

과거로부터 많은 소설과 창작물들에서 가장 흔히 쓰이는 말 중에 하나가 바로 '왕후장상의 씨가 따로 있는것이냐" 라는 말입니다. 필자가 과거 즐겨 보았던 중국 역사를 다룬 소설들에서는 한국소설보다 더욱 자주 등장하는 편입니다. 특히 주인공 혹은 주인공과 관련된 인물이 정권을 창출 하는 인물을 다룰 경우에는 더욱 그렇습니다. 대표적인 예로 중국 드라마 중에 과거 큰 인기를 얻었던 '대운하'라는 작품의 주인공은 전설의 검객으로 여러 다른 소설에도 이름이 등장하는 규염객인데 중국내에서는 지금까지도 가장 성군으로 칭송 받는 '정관정요'의 주인공 당태종 이세민과의 막역한 사이로 등장합니다. 왜 이 이야기를 하는가 하면 그들에게 명분은 개척하고 만들어 내는 것이지 한계의 틀을 가지고 대한다는 느낌을 주지 않는다는 말을 하고 싶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서 중국은 과거로부터 나라에 충성하는 충신을 다룬 이야기보다 늘 국민적 정서에 맞는 소설의 주제는 외세에 대항해 싸우거나 혹은 부패한 정권에 대항해 싸우는 인물이 주를 이루고 있다는 것이며 그게 그 시대에 밑바닥 민심을 읽어낼 수 있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반면에 충신을 다룬 작품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중국의 신필로 통하는 김용 외에 쌍벽을 이루는 작가 '양우생'의 작품 중 '평종협영록'의 여주인공 운뢰는 충신집안에 딸로 주원장과 나라를 건 승부에서 패한 집안의 후손인 장단풍과의 사랑을 다루고 있는 작품입니다. 그런데 이 두 주인공의 사랑의 걸림돌은 바로 이 출신에 있조. 국운을 건 일척건곤의 승부에서 패한 장사성의 후예에게 명나라란 그저 딛고 넘어서야할 정권에 불과할 뿐이조. 장단풍의 가문은 오이랏트라는 외세를 빌어서라도 명나라를 위협하려 합니다. 그게 바로 역사에서도 등장하는 '토목보의변' 이조.

드라마 '무신'은 김준을 그런 충신과 같은 맥락으로 그립니다. 주군에 대한 충성심이 매우 깊조. 충의를 그대로 표현하는 인물입니다. 그런 자가 때를 만나면 주변의 지지를 힘입어 비상하게 된다는 전통적 방식의 승자를 미화 하는 전개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김준은 최우의 사후 10년의 치세를 한 권력을 잡은 최고 집권자의 명단에 들어가 있으므로 승자라 할수 있지만 큰 틀의 역사적 관점에서의 그는 실패한 자입니다. 그를 미화할 필요는 전혀 없는 것이조. 차라리 적나라하게 그의 야망을 다루는게 현대적 정서에 맞습니다. 그 야망이 설혹 바른 길이건 아니건 상관 없으며 그가 어떤 선택을 했다면 왜 그래야 했는지를 보여주고 그런 선택의 결과가 정치적으로 어떤 영향을 끼치게 되었고 나아가 고려라는 나라의 운명에 미친 영향을 그려내면 족합니다. 김준에 대한 판단은 시청자가 하면 되니까요.

애초에 무신정권이라는게 한때의 명분을 얻어 득세하였지만 그 명분이라는것 자체도 일어설 때와 집권할 때의 뜻이 달라질 수 밖에 없고 권력을 얻고 난 이후에는 또 달라지곤 했습니다. 무신정권 초기의 뜻은 온데간데 사라지고 없는게 최우가 집권할 당시의 상황이었던 것이조. 그러니까 문신에 비해 지나치게 차별받았던 무신들이 아예 들고 일어나 천대받던 위상을 회복하는데 그치지 않고 집정하기에 이르렀지만 일단 권력을 잡은 무신들은 부정부패의 길로 들어서고 제거되기를 반복하여왔고 그중 가장 긴 집권 기간을 가졌던게 최씨 무신정권 이었던 셈입니다. 왕조의 틀에 갖혀 있으면서도 왕조를 쥐고 흔든 유례 없는 무신정권은 그 시작부터 한계를 안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 최우가 집권의 명분을 흐트러트리지 않기 위해 엄정한 법집행을 이야기 한다는게 조금은 우스운 이야기조. 그렇게 그리는건 눈가리고 아웅하는 식이라는 말입니다. 최우 역시 뜻이 있어 주변에 따르는 이들이 많았고 운까지 더해져 집권을 하긴 하였으나 그 역시 집권 말기에 호화롭고 사치스런 생화과 수십의 첩을 두었던 인물입니다. 드라마에선 최우가 몽고와의 항전 기간중 엄정한 기강을 흐트르지 않는 인물로 그리면서 첩을 일부 두는등 방탕한 생활이 일부 있었다는 식으로 보여주고 말지만 그 정도에 그친 것으로 보기엔 후일 그에 대한 평가가 그리 후한 것만도 아니라는 것이조. 그렇게 드라마에선 최우에 대해 지나치게 후하게 그리고 있는건 주인공 김준의 집권에 대한 명분 쌓기의 일환으로 해석해 볼 수 있습니다.

역사에 대한 평가를 시청자에게 맡기라는 부분을 어떻게 적용시키느냐는 이미 드라마에 등장 한 바 있습니다. 바로 강화천도를 말합니다. 최우를 대단한 인물로 그리려고 했다는 의도가 명백히 드러나는 대목이기도 합니다. 왜냐면 천도를 통해 정권은 연명할 수 있었지만 백성의 고통은 가중되고 말았조. 대장경 관련 부분도 그렇습니다. 고통 받는 백성을 더욱 고통의 구렁텅이로 몰아 넣으면서 오로지 기대고 의지할 대상을 만들어 주어야 겠다는 발상 자체가 일방적 지지를 보낼수 없는 부분인 것이조. 다시 말하지만 당시 집권세력이 항전을 결정하고 다수의 무신들이 그 뜻을 받들면서 장기간의 대몽고 항전이 일어난 그 자체가 그 시대의 선택이었다는 것을 있는 그대로 그리는게 더 나은 선택인 것이지 그 선택을 한 집정자를 미화할 필요는 전혀 없다는 말입니다. 시대의 선택이 그 집정자로 인해 드러난 것으로 그리는게 더 좋은 방법이라는게 필자의 주장인 것입니다.

"천도를 주장한 김준, 그 모습이 무신의 진정한 모습 아닐까"

필자가 보는 드라마 무신의 하이라이트는 바로 최우에게 강화도 천도를 주장해 관철시킨 그 대목입니다. 비록 천도 이후 백성들의 고통이 이어졌다고는 하나 무신정권의 휘하에서 김준이란 인물과 몽고항쟁에 나선 당시 무신들의 신념이 천도라는 결과로 드러난 것이니 그 과정을 드라마에서 그리고 시청자들은 각자의 관점에서 해석할 수 있도록 하는게 이 드라마의 중심포인트라 보는 것이조. 결국 김준의 신념이 천도라는 결과로 드러나게 하였다면 그런 발상이 나올 수 있었던 배경과 김준의 성격이 어우러져야 하는데 지나치게 고지식한 인물로 그리면서 행한일과 성격이 미스매칭의 느낌을 갖게 한다는게 필자의 주장인 것입니다.

"앞으로 예상되는 스토리"

최우의 서자로 나오는 만전을 망나니로 그리는 이유는 최우라는 인물을 멋진 인물이 망나니 서자들로 인해 골치를 썪인다는 정도의 설정을 하기 위함이 아닙니다. 그러니까 최우의 사후 만전(최항)과 그 아들 최의로 이어지는 권력의 이행 과정에서 최우의 뜻은 온데간데 없고 폭정이 이어지자 김준이 바로 잡고자 하는 뜻을 세우게 되고 결국 최고집권자가 된다는 정도의 전개가 이어질 것으로 예상됩니다.

그런데 이렇게 되면 같은 김준을 그리더라도 극의 흥미는 떨어지게 됩니다. 필자가 말하는 적나라한 야망의 인물로 김준을 그렸으면 어땠을까란 뜻은 바로 처음부터 혹은 중간에 어떤 계기를 통해 최고권력자로의 꿈을 갖게 되어 방해가 되는 걸림돌을 제거해 나가면서도 백성들의 고통을 뒤로 한채 강화도 천도를 주장하게 되고 결사항전하며 번민하는 모습을 보이는등 여러 각도로 설득력을 얻을 수 있는 그런 성정으로 만들어 나갔으면 하는 바램으로부터 비롯됩니다.

사극은 긴 호흡으로 봐야 한다지만 이후 위에서 예상한 스토리대로 간다면 극의 시청률은 당분간 탄력을 받기 어렵습니다. 초기 김준이 격구를 하고 중군장이 되고 공을 세워 면천을 하는 과정까지가 서서히 끓는 과정과 같았다면 몽고와의 결사 항전을 다루던 모습은 점점 극의 전개에 대한 기대감이 최고조에 이를 때였는데 하필 바뀌지 않는 김준의 지나치게 충직한 모습이 적나라한 드러나면서 더욱 시청률은 정체되어 가고 있습니다. 같은 과정이라도 능동적 인물로 그려내지 못한 탓이 아닐까 싶습니다.

 

"김준, 최우의 사후 패악질을 일삼는 최항-최의 시대의 종말을 고하는 역할"

역사적으로도 최씨무신정권을 종식시킨 인물인 김준. 위 필자의 예상대로라면 당장은 어느정도 시청률이 정체 될 수도 있지만 극의 후반부로 갈수록 긴장감과 재미는 증폭되어 갈 확율이 높습니다. 그러니까 이 드라마의 두가지 키워드는 '강화도 천도'와 '김준이 최항-최이를 제거하고 직접 집정을 하게되는 상황' 그 자체이니 지금으로부터 일정 시간이 지난 후의 이야기는 탄력 받을 확율이 크다는 것이조. 다만 필자가 바란건 바로 천도할 시점부터 달라진 김준의 모습이었습니다. 감정 몰입에 있어서 내가 주인공이 되어 흠뻑 빠져들게 하기 위해선 일정 시점에 김준이 야망을 품게 되고 그 야망을 이루려 준비해 나가나 몽고군의 침입으로 대의를 위해 일시적으로 야망을 접고, 천도 이후에서야 다시 서서히 주변인물들을 포섭해 나가지만 최우의 사망 이후 최항-최의가 집권하게 되는 두번째 좌절을 맛보게 되나 폭정을 종식시키자는 명분을 얻어 결국 야망을 이루는 그런 인물로 그렸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인 것이조.

 아마 이런 식의 전개가 현대인의 입맛에 맞는게 아닐까요? 옛날부터 너무 자주 그리고 흔하게 써먹은 '충직한 길을 가다 어느순간 때를 만나 명분을 얻고 성공한다'라는 식의 전개 말구요. 조금 식상하기도 하면서 예측이 너무 쉽게 가능하다는게 문제라면 문제입니다.

"극의 주인공은 김준, 몰입은 김준으로 시작해서 김준을 귀결되어야 하는데 최우를 대단하게 그리고자 사위와 딸을 희생시키는 장면을 부각시킴으로서 일시적인 몰입은 주지만 연속성이 떨어지면서 시청률은 정체되고 후일 최씨정권을 무너뜨리는 뒷 이야기를 기다리기엔 시청자들이 지쳐버린다" 라는게 이 글의 요지이자 주장입니다. 아무래도 능동적인 인물로는 조금 부족한게 핵심이겠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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