닥터진, 원작의 의도와 다르게 전개될 수 밖에 없는 이유

닥터진은 일본만화를 원작으로 하고 있다. 송승헌이 연기하는 진혁의 원작 주인공의 이름은 미나가타 진. 진혁이 뇌수술을 하며 발견한 태아의 모습을 한 종양으로부터 과거와 현재의 끈이 이어지게 된다는 내용은 원작과 다를바 없다. 구성과 전개 모두에서 거의 일치하는 진행을 띄고 있는 셈이다.

그럼 어디서부터 다른 부분이 있게 되는 것일까? 그건 바로 주인공이 돌아간 시대상을 통해 알아볼 수 있다. 즉, 원작에서 개화를 대하는 일본과 한국이 처한 상황에서부터 다른 인물들이 등장할 수 밖에 없게 되는 것이다. 이 작품은 그러니까 일본의 메이지 유신을 다룬 또다른 형태의 작품이라는 것이다.

일본은 유독 이 메이지시대를 다룬 만화 드라마 영화가 홍수처럼 범람하고 있다. 그것은 개화를 성공적으로 이끈 그들의 자부심과 연관되어 있다. 개화는 기존의 질서를 무너뜨리고 새로운 질서를 만들어 나가는 과정이었고 일본의 계급사회의 주축이었던 무사계급 내에서도 개화에 찬동하는 측과 반대하는 측이 서로의 피를 흘리며 자신의 신념을 위해 싸웠다.

일본과 한국에서 큰 인기를 끈 바 있는 '바람의 검심'의 주인공 켄신을 비롯해 닥터진과 같은 색다른 인물을 내세운 작품도 여럿이지만 주로 료오마라는 인물에 대한 소설이 특히 많이 존재한다. 이런 작품들은 아주 뚜렷한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바로 변화의 바람속에 자신이 처한 입장에 따라 자신의 신념을 믿고 최선을 다하였으나 시대의 흐름은 그렇게 흘러갔다는 식인 것. 누가 옳고 그름을 따지려 하는게 아니라 얼마나 치열하게 살아 갔는가를 보여주려 한다.

아무튼 이런 이유로 원작의 시작과 끝과 관련된 부분은 대사 토씨하나부터 거의 흡사하게 시작되고 중간 중간 수술 장면도 대동소이 하지만 등장인물들은 완전히 달라 질 수 밖에 없게 된다. 그러니까 원작의 메인스토리를 따라 가는 인물들은 에도시대와 조선시대의 차이에 따라 약간은 달라지게 되고 그외는 완전히 새로운 인물이 등장하여 드라마만의 색깔을 덧씌우게 되는 방식인 것이다.

 

원작 만화 정식 한국어판 표지

홍영래 (박민영)

예를 들어 박민영이 연기하는 홍영래는 원작에서도 등장하나 러브스토리는 조금 달라졌다. 현대에서 박민영은 송승헌에게 평행이론을 이야기 하며 다른 시대에 내가 살고 있는 것 같다고 말한 바 있는데 이런 부분은 만화에선 굳이 설명하지 않는 부분이다. 현대에서 실연을 당한 미나가타는 시간을 거슬러 에도시대로 간 후 사키의 오빠를 수술로 구하게 되는데 현대에서 헤어진 연인과 에도시대의 사키가 닮았다는 설정은 드라마에서만 보인다. 

즉, 드라마 닥터진은 원작의 시대상이 중요하긴 하나 원작만큼의 비중을 두지 않고 대신 그 약간의 비중을 한국인이 좋아 하는 러브스토리를 강화 하거나 화면으로 보여주여졌을때 필요한 장치들을 추가하는데 할애 하고 있다. 실제로 드라마 2화 동안 나온 내용만 가지고 언제 원작의 스토리를 다 풀어 낼까 싶은 분도 있을 수 있는데 그런 걱정은 할 필요가 없는게 애초에 드라마에서 다 보여줄 생각을 하지 않는다고 봐야 한다. 과감한 생략이 많을 것이며 주로 조선말기의 안동김씨, 흥선대원군, 개화에 대한 갈등을 부각시키며 그 가운데 자신을 돕게 되는 박민영과의 러브스토리가 담기고 의원으로 활동하며 당시는 일본이나 한국 뿐 아니라 전세계적인 공포로 알려진 홍역과 콜레라와 같은 전염병 혹은 당시로서는 난제였던 문제들을 해결해 나가는 활약상을 주로 그리게 될 것이다.

 미나가타진은 새로운 시대를 맞아 새로운 일본을 만들기 위해 뜻을 세운 인물들과 교류하게 되고 서양의학을 이미 나름대로 접하기 시작한 신식의사들에게 의료 방법을 전하기도 하는데 애초에 역사 자체가 그들은 성공했다는 전제하에 시작하고 있어서 이런 전개가 가능하나 원작과 다른 시대상인 조선시대는 동시대의 일본과 완전히 다른 길을 걷고 있다.

이하응 (이범수, 흥선대원군)
- (약간의 스포일러가 있을 수 있다.)

한국판 드라마 닥터진은 그러니까 과거로 돌아간 의사가 시대상과 맞물려 일어나는 일들에 휩쓸리게 된다는 면에서는 같으나 러브스토리가 강화되는 등 보다 심층적인 인물을 만들어 내려는 모습이 포착되고 있다.

단적인 차이를 예를 들어 설명해보자.

미나가타는 사키의 오빠를 수술하기 위해 청결을 강조하며 사키와 사키의 어미니를 밖에 나가 있으라고 하는데 드라마에서도 마찬가지로 청결에 대한 대화가 나오면서 완전히 같은 구성을 보이다가도 사키와 사키의 어머니는 피를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느냐는 진의 말에 자신은 무사집안의 딸이라며 피를 겁내지 않는다고 말하며 참관하게 되지만 드라마에서는 이하응이 등장하고 안동김씨가 천하위에 서 있는 것에 대해 반발하는 정체불명의 무사집단이 등장하면서 그들의 일원으로 추정되는 홍영휘가 부상을 당해 돌아오자 그를 구하기 위해 나선 진혁은 수술을 하게 되고, 이런 과정에 의문을 느낀 박민영이 수술하는 방에 들어서서 뇌에 구멍을 뚫는 장면을 보게 되고 이에 분개한 영래아가씨는 포청에 진을 고발하게 되는 식의 전개를 보이게 된다.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도 다르다.

원작은 일본작품이 늘 그렇듯이 어느 한쪽의 편에 서서 보긴 하나 크게 보면 시대를 치열하게 살아 가는 인물들이 자신이 선택한 길에 대한 이유를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그 선택에 대한 결과를 스스로 치루게 되는 모습들을 보여주는 식이지만 이 작품에선 등장하는 인물들이 대개 진보적 위치에 있는 인사들이 주를 이루게 된다. 이들은 서양의학을 배척하려 하지 않고 서양인들과는 필요에 의해서는 친하게 지내는척 하나 철저히 이용하려는 자세로 대할뿐 무조건 힘으로 몰아내려고 하거나 하지 않는다. 이렇게 세상을 바꾸어 내려고 하는 다양한 군상들을 보여줌으로서 변혁의 바람의 한켠에 미나가타가 있다는 식의 전개가 되는 것이다. (중국 드라마나 왕화도 비슷한 양상을 보인다. 홍콩영화 '황비홍' 이나 엽문 등에서 그려진 방식도 연상된다.

그런데 드라마 닥터진의 배경인 조선말기에는 다른 선택이 이뤄졌다. 흥선대원군이 펼친 쇄국정책 그리고 그 이전 배경인 안동김씨의 집권 시대의 부조리와 권력에 대한 암투등을 다루게 되면서 변화의 바람이 주를 이루고 그 가운데 여러 군상과 역사적 사건들을 접목시키는 방식의 원작과는 다르게 부정부패에 맞서 싸우는 의인들이 등장하는 식의 전개가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같은 의인들이 등장해도 그들의 관점에서 부정을 심판하거나 하는 식으로 진행되는 것과 부정의 원흉들이 주를 이루고 그에 대응하는 식의 전개는 완전히 다르다.

아쉬운점은 없을까?

나는 드라마 닥터진을 보면서 대체적으로 두가지에 불만을 느꼈다. 이말인 즉슨 두가지 외엔 대체적으로 만족스럽다는 뜻이며 재밌게 보게 되었다. 그럼 무엇이 불만이었을까?

첫째, 송승헌의 연기

송승헌의 연기는 필자가 보기에 지난 마이프린세스보다 나아진 부분이 많다. 다만 아쉬운건 배역에 대한 이해도가 부족했던 것인지 오히려 몰입도는 부족했다. 그래서 전체적인 평가는 한걸음도 앞으로 나가가지 못하였다. 내가 생각하는 미나가타진은 적극적 관찰자로 다른 시대에서 살다 왔다는 자의식이 강한 반면 새로운 세상에 적응하고 그 안에서의 내 역할을 찾아내고자 하는 의지가 매우 강한 인물이다. 때론 맹탕으로 보이다가도 자신의 일에 대해서만은 너무나 진지하게 임해서 감명까지 받을 수 있는 그런 연기가 필요하다. 물론 원작과 같은 필요는 없지만 기본적인 캐릭터의 뼈대를 다르게 하려면 그 다른 모습이 어떤지부터 확립해서 보여주어야 하는데 아직까지는 진혁이 뚜렷한 색을 찾지 못하겠다.

필자가 주문하고 싶은건 '적극적인 관찰자 이면서 행동하는 자'로 그를 그렸으면 하는 것.

둘째, 느린 전개

일본은 드라마가 11부가 거의 대부분이다. 미국의 경우는 워낙 경우의 수가 많아 들쭉 날쭉 하긴 하나 주1회 방송에 플레이타임은 무려 40분으로 한국과는 아주 큰 차이가 있다.

필자의 입장에서는 빠른전개와 느린전개는 각각 장단점이 있으므로 굳이 빠른전개만을 원하지는 않는다. 미드의 경우 종종 조금은 과한 생략이 아닌가 싶을 때도 적잖다. 아무튼 그럼에도 대체적으로는 빠른전개와 꽉 찬 구성은 매우 흡족한 경우가 많다. 반면에 근래의 한국드라마는 과거의 구태에 머물러 있는 경우가 많다. 인물들간의 상호관계와 갈등을 주로 그리는 고유의 특성은 이어가는게 좋겠지만 너무나 늘여 뜨리는 버릇은 고치지 못하고 있다. 한일간의 역사가 다르니 닥터진 원작과 다른 흐름을 만들어낼 필요성은 있다손 치지만 감당할 수 없는 인물들을 새로 배치하고 사건들을 넣음으로서 깔끔한 스토리 진행이 복잡해지고 그러다 보면 방만해지게 되는 여러 인과관계들을 어떻게 수습할지 벌써부터 걱정이다. 결국 수습이 제대로 된다고 하면 본래 나올 수 있는 많은 이야기가 점점 줄어 들 수 밖에 없다.

나름 신선한 시도가 돋보이는 작품이 '닥터진'이다. 위에서 지적한 두가지 문제만 잘 해결해 나간다면 나름 좋은 시청률과 좋은 작품으로 기억될 수 있을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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