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20대와 지방의 20대는 왜 투표민심이 달랐을까?

서울 20대 투표율이 64%에 이른다는 보도가 나왔을 때 너무나 크게 놀랐다. 전국 투표율이 54%이고 그 중 20대의 투표율이 45%가량 된다는 출구조사결과와 대비해 생각해 보면 정말로 놀라운 수치가 아닐 수 없다.

서울인구가 천만이하로 내려갔다고는 해도 수도권을 포함하면 20대의 절반에 해당하게 되는데 종합하여 45%라는 것은 나머지 절반이상이 30%에도 못미친다는 결론이 나온다. 보다 정확한 수치를 산출할 수는 없으나 너무나 큰 온도차가 있음은 짐작할 수 있다.

01. 학습효과
02. 관심

두번째 이유인 관심은 공통된 의식수준을 말한다. 다시 말해서 30~40대와 함께 직장에서 혹은 가정에서 동일한 주제를 가지고 대화와 토론을 하며 정치적 관심도가 커지고, 대학 등록금이나 복지 대규모 토목공사 등에 대한 비판 여론이 승리한 박원순 서울시장의 예등 여러 정치적 사안들이 참여에 따라 변해 가는 것을 직접 보고 겪고 바꾸었던 경험이 지방과는 아주 크게 다른 투표율이라는 결과를 만들어 냈다고 보는 것이다.

반면에 지방은 전체 투표율의 평균은 크게 떨어뜨렸기에 많이 잡아도 30%가 채 되지 않는데 이는 전체적으로 지방에는 정치과 생활의 상관관계를 깨닫지 못하는 부류가 많이 있다는 것을 방증한다. 즉 지방의 20대사이에서는 대화주제에 정치는 관심대상이 되지 못하고 있다는 말이다.

- 실제로 서울과 지방의 SNS 사용비율 차이는 매우 극심하다. 수도권은 51%, 지방 대도시인 대전이 8%, 가량이라 한다.

 

 

이슈의 중심에 있는 나꼼수. 서울 20대의 높은 투표율에는 아마도 나꼼수와 SNS가 지대한 영향을 미치지 않았나 생각된다.

 

20대의 좌절과 패닉, 극복하라.

총선결과 진보의 패배로 인한 30~40대의 패닉은 20대 보다 깊고 무겁다. 특히 참여정부 시절 20대를 보내고 30대가 되어 세상의 중심에서 사회 각분야에서 활약하는 30~40대에겐 이번이 한번의 좌절이 아닌 두번 세번 당하는 좌절이기에 너무나 무겁게 가슴을 짓누르는 결과로 받아들여질 수 밖에 없다.

1997년 IMF 이전과 이후에 사회에 나선 세대간의 차이는 매우 극명하게 나뉘고 있다. 특히 어린시절이나마 전두환 노태우 김영삼정권을 TV와 신문에서 보고 겪었던 세대는 민주화 운동이 결실을 이루어 직선제가 되는 과정을 보았기에 투표권이 얼마나 중요한 나의 의사표현의 한 수단인지 절감하고 있지만 그 이후의 세대는 정치에 대한 관심이 무관심을 넘어 혐오감을 드러내고 관련 주제는 아예 외면해 버리거나 심지어 공격적으로 방해한다.

20대를 그렇게 보내고 30대가 되어도 여전히 관심이 없기에 무지하고 무지하기에 더 관심이 없는 사람은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이면을 파악할 능력이 없기 마련이다.

20대를 말하기 전 30~40대를 말한 이유는 이렇게 가장 근접한 세대가 얼마나 큰 좌절감을 느끼고 있는가를 말하기 위함이다. 그리고 좌절의 와중에서도 다시 일어설 수 있는 용기를 갖길 바한다. 아직 다가오지 않은 미래를 바꾸어낼 힘은 그들 스스로에 손에 쥐어져 있으니 놓치고 버릴 생각보다는 적극적으로 사용하길 바라는 것이다.

30대 투표율이 44.1%라고 한다. 서글픈 현실이다. 지금의 30대는 IMF이후 한국의 경제가 많은 구조적 변화를 갖는 시기에 사회에 나와 너무나 잦은 좌절을 겪어왔다. 변화를 희망했으나 변화의 힘이 달려 자멸하는 것을 보아왔다. 불꽃처럼 타오르는 시기를 지나 조금씩 포기해 나가며 적응해가는 시기의 30대를 포용하기 위해서 가장 절실한 것은 공천혁명의 성공이다. 정치공방의 이면을 들여다 볼 줄 알지만 오히려 더욱 희망을 갖지 않는 이유는 사람이 정치의 중심임을 본능적으로 깨닫고 있는데 그 사람을 바꾸지 못하는 것을 반복해서 보다 보니 희망을 갖기보다 냉소적이 되었던 것이다.

필자는 지난 글에서 20대와 30대 모두가 투표율이 낮았을 것으로 추측한바 있다.  정치라는게 결국 사람이 하는 것이기에 어느 누가 공천되는가는 투표율에 절대적인 영향력을 미친다. 30대에겐 그게 중요하다.

2012년의 20대는 좌절하지 않고 용기를 내고 극복할 수 있는 조건이 조금 앞선 세대인 30대보다 훨씬 나은 상황이다. 다른 이유가 아닌 관심을 가지고 대화 할 수 있고 토론하며 그 관심을 정치적 승리로까지 이끈 경험을 지난 서울시장 선거에서 겪어보았기 때문이다. 좌절을 극복할 수 있는데는 이런 경험이 무엇 보다 중요하다. 패배주의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는 승리의 달콤한 결과를 경험해보아야 하고 그 승리를 지켜내는게 얼마나 어려운지도 실감해야 한다.

SNS혁명이 정치적 변화를 이끌어 내는데는 한계를 보이긴 했지만 얼마든지 더 많은 변화의 원동력이 될 수 있는지의 가능성도 보여주었다. 변화의 중심에 다른 누구도 아닌 뜨거운 가슴을 안고 살아가는 20대의 청춘이 있다는것에 인생의 선배로서 너무나 가슴 뿌듯하다. 20대여 일어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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