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은 없다, 역사를 왜곡하고 스스로를 기만하여 흥하려 해도 흥할 길이 없다.

일본은 전쟁을 일으킨 광인들을 전범이라 하지 않고 영웅으로 기리는 곳까지 마련하여 신사라 하고 있다. 그들이 비록 과거와 현대를 잇는 시기를 현명하게 보내지 못하고 허송세월한 대부분의 나라들의 오류를 범하지 않고 메이지 유신을 전후하여 나라의 틀을 바꾸어 놓으니 변화의 거센 힘을 바탕으로 20세기 세계를 뒤흔드는 전쟁의 주역이 되기도 하였고, 다시 한국전쟁을 발판삼아 경제대국으로 성장하기도 하였다. 하지만 영화 '신선조'나 애니 '바람의검심' 혹은 베스트셀러 소설에서 그리고 있는 혼란의 시기는 누가 옳고 그른것인지 알 수 없는 일이었다. 결과가 그렇게 되었을 뿐이다. 그렇기에 명성황후와 흥선대원군의 갈등으로 대변되는 조선 시대 우국지사들의 갈등을 누가 옳고 누가 그른것으로 판단하기 보다는 구국의 뜻은 같되 다른 길을 걸었을 뿐이라 생각하는게 맞는 것이다. 물론 그 와중에 사욕을 챙기는 무리가 있으니 소설이나 영화를 집필하고 만들 사람이 있다면 그들을 주적으로 등장시키면 될 일이다.

 경제대국 일본은 문화적으로 오랬동안 강세를 유지해온 비디오게임과 망가를 바탕으로 유럽각국과 미국에 깊숙히 침투하였지만 제대로 된 대접을 받지 못하고 있다. 이는 지극히 당연하게도 한국을 비롯한 중국과 주변 각국이 아무도 일본의 문화를 인정해주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역사적으로 아군이 없는데 그들의 컨텐츠를 온전히 받아들이고 수용할 나라는 없다. 그래서 일본은 없고, 마찬가지로 이 글에서 주장하려하는 중국은 없다는 내용이 성립 된다.


 

만리장성/萬里長城/The Great Wall
만리장성/萬里長城/The Great Wall by mR.Son.Photo 저작자 표시비영리변경 금지


 

문자로 지식을 전하게 될 수 있는 지식혁명은 인류에게 있어서 단연 첫손으로 꼽을 수 있는 최고의 발명임이 틀림 없다. 특히 인류에 국한되어 생각지 않고 세상 전체의 흐름에서 보자면 더더욱 문자는 최고의 발명이다. 그런데 21세기 들어 중국이 기존의 사료로 남겨진 역사적 지식을 뒤집고 새로운 '하나의중국'을 외치고 있다. 하지만 그런다고 해서 억지로 왜곡시켜 거짓으로 꾸미고 있는 진실이 영원히 존속될 수 있을까? 과거의 역사는 승자의 역사였다고는 하지만 그것 역시 그 시대의 소명을 다하고자 하는자들이 남긴 기록이었을 것이다.

하나의 중국이 힘을 받는 이유는 중국이 경제적으로 부흥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주변국들 중 역사와 명예보다 손에 쥘 수 있는 떡 한조각이 중요하다 여기는 나라가 늘어날 수록 '하나의중국'은 더욱 가속화 될 수 있다. 그러나 수천년에 걸친 각국의 역사적 기록을 모두 뒤엎을 수는 없다. 한국이 그러하고 러시아 일본 베트남과 몽고 등 역사적 뿌리가 깊은 나라일수록 중국이 역사적진실을 왜곡하고 있는 이 순간에도 평행선을 달리는 기록을 만들어 내고 있기 때문이다.

먹고 사는일이 중요할 때는 이런 문제가 뒷전으로 밀려날 수도 있지만 언젠가는 역사적 진실이 현실에 직접 영향을 주는 일이 생기게 되기 마련이다. 예컨데 역사적 사실관계로 인해 각국의 득실이 달라질 경우 첨예한 갈등이 빚어질 수 있다. 실제로 우리에게 큰 문제인 독도 뿌만 아니라 중국과 러시아 그리고 일본은 지금도 여러 영토분쟁에서 권리를 주장하기 위해 과거의 기록 뿐만 아니라 참으로 많은 수단을 동원해 정당성을 만들어 나가고 주장해 오고 있는것 아닌가.

결국 중국의 '하나의중국'은 완성될 수도 없거니와 일본의 신사참배처럼 중국외의 모든 나라들의 적대감을 키울 수 밖에 없다. 그것은 중국의 경제부흥기를 지나가면 급격히 모순점을 드러내면서 잠재된 불씨들이 커질 중요한 변수가 될 것이다. 중국인들은 일방적으로 일본의 문화를 비웃으면서도 할리우드의 문화를 배끼고, 배낀 것을 부끄럽게 여기지 않으면서도 중국인의 중화사상을 은근히 자랑스럽게 생각함을 드러내지만 과거와 오늘날의 세상은 크게 다르다는 것을 간과해서는 아니된다.

중국의 저력은 오랜 역사동안 최근의 수백년을 제외하고 수천년을 항상 서양에 비해 압도적인 군사 문화적 강국이었다는 사실에 바탕하지만 그러한 자부심은 영원할 수 없는 세상이 왔다. 20세기는 과거의 수천년에 올 변화를 단 1세기만에 이뤄낸 시기였으며 그러한 시기를 이미 보내고 맞은 21세기를 과거의 경험을 통해 이해하려 하는 것은 전적으로 옳은 일은 아니다. 물론 인간의 삶에 관련된 대부분의 경우는 그 경험이 녹아 있는 그대로 적용될 것이지만 기존에는 경험해 본적 없는 근본적인 변화가 찾아오고 있는 세상이 아닌가.

 그 중심은 바로 유례가 없는 환경적 변화이다. 인터넷과 온난화 그리고 핵. 인류의 역사에 있어서 경험해 본적 없는 변화는 너무나 빠르게 우리에게 다가오고 있다. 중국이 중화의 자부심만으로 온전히 이겨낼 수 있는 변화라 보기는 어렵다. 잘나갈때 친구를 만들어 두지 않고 적을 늘려가고 있는 중국의 미래가 희망적이지 많은 않다는 말이다. 

요즘 한류가 인기인데, 이 한류는 근본적인 단계에서 퇴색할 이유가 없다. 타국의 자존심을 건드리는 일이 없기 때문이다. 혐한이나 반한도 물론 있겠지만 대세라 할 수 없는 것은 그들의 깊숙한 곳을 건드리는 줄기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신사참배와 전쟁에 대한 진실한 반성이 없는 일본은 필자가 살고 있는 당대 뿐 아니라 적어도 앞으로 역사기 기억하는동안에는 깊숙한 저항심리를 갖게할 것이고, 하나의중국 역시 그러한 맥락에서 위험한 작업이다. 중국 혼자 내부문제를 다스리고 봉합하려 하나의중국을 외친다해서 주변국들이 그것을 인정하고 용인하고 받아들일까? 절대 그럴일은 없으니 중국의 미래를 희망적으로 보지 않는 것이다.  힘 있고 좋을때 적을 만들어 나가면 나중에 조금만 흔들려도 적들이 들고 일어설 것 아닌가.

 

 

얼마전 중국영화 '명장 관우'를 보았다. 중국이 크게 발전하고 있지만 영화만 보아도 얼마나 뒷처저 있고 세상의 변화에 둔감한지 알 수 있게 해주는 영화였다. 영화를 보면서 중국인들의 허풍에 다시 한번 혀를 내두를 수 밖에 없었다. 중국인 외에 누가 삼국지에 위촉오로 나뉘기 전의 원소에게 20만대군이 있었다라는 허풍을 믿어줄 것인가. 지금의 중국땅에 비해 반의반도 안되는 땅덩어리에서 인구로는 수십분의 일도 안되었을 시기에 일개 원소가 20만대군을 보유하고 있었다니, 기가 찰 노릇이다. 그리고 조조를 갑자기 미화시키고 있는 것도 무언가 이상한 느낌을 준다. 아니 모순을 스스로 만들어 내고 있다. 과거 그들이 숭앙하고 받르던 악비의 이야기만 보아도 알 수 있는 문제이다.

다음 기사를 보자.
중국판 이순신, 악비가 홀대받는 이유

6년전 기사인데, 구국의 영웅이 갑자기 홀대 받는 이유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즉, 과거 금나라를 물리치며 승승장구하던 악비는 20세기 들어서 중국인의 거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한족의 입장에서 우리나라의 이순신과 같은 대접을 해주게 되었는데 이를 그 누구도 나무라지 않다가 하나의 중국을 외치게 되면서 다시 진회에 의해 억울한 죽임을 당한 뛰어났던 장군정도로 되돌려진 것이다. 이 뿐만 아니라 한때 우리를 충격에 빠지게 했던 징기스칸을 몽골이 아닌 중국의 영웅으로 묘사한 일도 같은 맥락이다.

그렇다면 오늘날 여진이나 말갈의 후손들은 무엇을 하고 있으며 선조의 역사를 알기나 알고 있을까? 이에 대해 중국인들의 생각은 어떨까? 답은 현대 중국에 살고 있는 대부분의 중국인들은 한족이든 아니든 이제 그들의 조상에 대해서는 잊고 하나의 중국에 흡수되어 있으며, 그러한 생각이 기본으로 자리 잡고 있다. 억지가 아닌 이유는 교육의 힘이다. 이제 우리가 기억하는 중국의 역사는 더 이상 없다. 그저 현대 중국의 영토안에 중국인들이 살고 있을 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없다. 수천년을 이어온 역사의 줄기를 중국이라는 용광로에 모두 녹여내고 있다. 많은 무리수가 있지만 그렇다고 성과가 없는게 아니다. 약하고 갈라진 틈새와 같은 부분은 모두 모두 흡수되어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중국만이 남아 있으니 어찌보면 큰 성과를 내고 있다고 보는것도 맞을 것이다.

그러나 중국은 내부의 적과 외부의 적을 키워나가며 벽에 부딪힐 때 친구가 아닌 적을 만든 것에 대해 그리 좋은 결과로 돌려받지 못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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