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공심법을 익혀 한주먹에 바위를 부수고 검을 타고 산과 강을 날아 다니는 것만 무협에 있는게 아니다. 소설이라는 형식을 빌려 표현하는 이야기이니만큼 사람 과 사람 속에서 피어나는 사랑과 우정 등도 이야기 되어지는데, 이중 사자비가 가장 재미있게 보았던 작품 BEST3를 소개하고자 한다.

BEST 1, 신조협려 / 김용작



신조협려는 주인공인 양과와 소용녀의 애절한 사랑이 이 작품을 애정무협이라 해도 무방할 정도로 이야기의 중심에 있다.

바로 이때 남루하게 옷을 입은 한 소년이 왼손에 수탉을 한 마리 들고 노래를 부르며
깡총깡총 뛰어오다가 동굴 앞에 사람들이 여럿 서
있는 것을 보자 놀라 말했다.
 [아니, 당신들은 남의 집 앞에서 뭘 하는 거예요 ?]
 이막수와 곽부의 앞으로 걸어온 소년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두 사람을 번갈아 쳐다보다가
안심한 듯 웃으며 말했다.

 [헤헤, 큰 미인은 뛰어난 미모를 지니고 있고, 작은 미인도 여간 아름답지 않구나. 두 아가씨는 나를 찾아왔나요 ? 이 양씨는 지금껏 이토록 아름다운 친구가 없었는데‥‥‥.]
 얼굴에 웃음을 가득 담고 말하는 것이 마치 기름을 친 듯 거침이 없는 목소리였다.
 곽부는 입술을 약간 찌푸리며 화가 나서 말했다.
 [이 거지야 ! 찾아오긴 누가 널 찾아오니 ?]
 소년은 웃으며 말했다.
 [나를 찾아온 게 아니라면 왜 우리집에 왔지 ?]
 말하고 나서 굴을 가리키며 이 부서진 굴이 바로 자기 집이라고 말했다. 곽부가 말했다.
 [흥, 이런 지저분한 곳에 미쳤다고 찾아오니 !] - / 양과의 첫 등장

  "세상 사람들에게 묻노니, 정이란 무엇이길래 생사를 가름하는가?"

주인공 양과는 <사조영웅전, 영웅문1부에 해당> 에서 온갖 파렴치한 행위를 서슴치 않던 양강을 아버지로 두고 있다. 사실 양강과 사조영웅전의 주인공 곽정은 또한 그 윗세대로 부터 인연이 있었으니 3대에 걸친 세월속에는 말할 수 없이 깊은 인연과 사정이 함께 했다고 할 수 있다. 양과의 이름을 곽정이 지어주며 과"過(지날,허물)'"로 양강으로 비롯된 죄업을 물려 받지 않도록 하려는 뜻을 담고 있다.

일찍 병들어 죽은 어미를 떠나 하릴 없이 고생하며 세상을 떠돌던 양과는 <사조영웅전>의 주요 악역으로 나오다 마지막에 결국 '구음진경(절세비급, 쉽게 말해 이안의 무공을 배우면 절정의 고수가 될 수 있다는 정도로 이해)' 을 잘못 구술받아 익히다가 미쳐버렸던 그 <서독 구양봉>과의 인연도 맺게 되고 이어 곽정에게 발견되어 도화도로 가게 된다. 

<사조영웅전>에서 화사한 미모에 밝고 명랑하며 총명하기까지 했던 황용은 이 <신조협려> 에서 만큼은 양과가 무난하게 성장하는 것을 방해 하는 여인으로 등장하게 되는데, 그것은 그만큼 양과의 아버지와 그 윗대의 악연이 가볍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하다.(하지만 너무 심한면이..) 곽정의 뜻과 달리 황용은 양과에게 무공을 가르치지 않았고, 남모르게 차별을 하였는데 황용의 딸 곽부 역시 양과를 괴롭히는데 일조하게 된다. 곽부는 오만하여 자신을 떠받들어 주는 무씨형제와는 달리 그렇지 않은 양과에게 앙심을 품고 도화도에서 생활 하는내내 양과를 괴롭히게 된다. 그러던 어느날 분을 참지 못한 양과는 <서독 구양봉>에게 배웠던 무공을 사용하게 되고...

결국 곽정은 자신이 가장 믿고 있는 전진교에 양과를 맡기게 되는데, 그곳에서 조차 적응하지 못한 양과는 우연히 알게된 '고묘' 에 들어 가 살게 된다.

 

 여도사는 길게 탄식을 하며 왼손을 들어 선혈이 낭자한 손바닥을 바라보며 나직이 중얼거렸다.
 [무엇이 저리도 좋을꼬! 계집애들은 희희덕 거리며 노래만 부를 줄 알지
가사에 담긴 그리움의 아픔이나 애절한 뜻은 전혀 알지 못하는구나.]
 이 여도사의 10여장 뒤에 청포를 입은 수염이 긴 노인이 미동도 없이 줄곧 서 있었다.
이 노인 역시 노랫소리를 듣자 극히 가벼운 탄식
을 하였다.
 노래의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세월은 덧없이 흘러 사람은 간 곳 없고
 옛정은 꿈같이 공연히 애간장을 태우네]


소설의 초반에 등장 하는 이 두 인물은 무삼통과 이막수다. 신조협려의 등장 인물들은 대개 치정에 얽매여 있는 경우가 많은데, 노인은 정으로 인해 실성하였고, 젊고 아름다운 이 여인은 정으로 인해 사악하게 변하였다. 이 두사람이 초반부를 장식한 것은 이들이 목적지로 하는 육가장의 사연과 관련이 깊다. 육가장주 육전원은 이막수가 사모하였었고, 장주의 부인인 하원군은 무삼통의 의붓딸이면서 사모하던 사람이었던 것.

원한을 품고 육가장에 이들이 나타났으나 이미 육가장의 부부는 생사를 달리 하였다. 이막수는 신조협려라는 글의 초반부터 등장하여 마지막까지 가장 사악한 마녀로 등장하는데, 한이 극도에 이르러 수 없이 많은 사람을 해하고 원한을 불러 일으키며 온갖 풍파를 일으켜 독자들의 울분을 쌓이게 하는 가장 주된 인물로 나온다. 이모두가 정으로 인한 것이다.

 
[두 계집아이들이 여기 있으렸다 ! 죽었든 살았든 모두 밖으로 끌
고 나와라.
그렇지 않으면 내가 너희들을 몽땅 태워서 술그릇으로 만
들어 버리리라.]
 목소리는 은구슬이 굴러가는 듯 또렷또렷하고 부드러웠다.
 무삼통이 황급히 굴을 나와 보니 과연 이막수였다. 무삼통은 이막수
를 보는 순간 괴이한 생각부터 먼저 일었다.
 (어찌하여 십 년의 세월이 흘렀는데도 이 여자는 이토록 젊고 아름다울까 ?)
 그때 육전원의 연석에서 서로 만났을 때 이막수는 스무 살 남짓이었으니, 지금은 서른이 넘었을 텐데,
눈앞의 이막수는 옷차림이 달라진
것을 제외하면 아직도 뽀얗고 부드러운 살결이 예전 그대로였다.
손으
로 가볍게 허공을 젓는 여유 있는 자태, 아름다운 눈에 흐르는 빛, 복숭아 같은 양볼은 무엇으로
보나 사람을 죽이고도 눈 하나 깜짝 않는
악독한 마두라기에는 곱게 행실을 닦은 부잣집 규수 같았다


이막수는 본래 여주인공인 소용녀와 같은 고묘 출신이으로 그 시조는 임조영이었다. 김용의 여러 작품에 배경으로 등장하게 되는 '화산논검' 에서 천하오절의 중심이자 천하제일인이 된 '중신통 왕중양'은 고절한 무공을 지녔으나 금나라의 침범으로 강산이 피에 젖자 이에 격분하여 의병을 일으키게 되는데, 결국 싸움에서 패하고 출가하게 되었다.  한때 임조영과 왕중양은 강호를 함께 누비며 그 연이 닿는듯 하였으나 임조영의 마음을 끝내 외면한 왕중양이 머물고 있던 '활사인묘' 즉 고묘에서 나와 전진교를 만들자 임조영은 '고묘파'를 만들어 끝내 못이룬 사랑의 원한을 가슴에 품고 쓸쓸히 여생을 고묘에서 보내게 된다. 그러나 이 임조영의 유시가 고묘파의 후예들에게도 전해지니 바로 남여간의정을 금하는 것이었다.

고절한 무공과 높은 인품으로 세상을 아우르던 두 무공 조사들의 안타까운 인연이 후세대에 까지 영향을 미쳐 다시금 치정의 문제를 일으키게 되니, 그 후예는 바로 다름아닌 이막수와 소용녀 였던 것이다.

"사람들에게 묻노니
정이란 무엇이길래 생사를 가늠하느뇨
꽃내음 봄바람 내 마음에 스며도
날 안은 임의 품 속 그 어찌 잊으리
황량한 가시밭 길 맨발로 걸어도
꿈 속의 임 그리워 추억을 쫓아가네
헤쳐온 모진 세월 귀밑에 쌓여도
임을 향한 마음은 가실길 없어라
사람들에게 묻노니
정이란 무엇이길래 생사를 같이하느뇨"

소용녀는 어린시절부터 외부인을 만나지 않고 살았다. 소용녀는 사부의 가르침으로 감정이 없고 마음이 차가운 여인. 그런차에 만난 양과는 허튼짓을 잘하고...

이렇게 시작된 양과와 소용녀가 만남과 헤어짐을 반복하는 것이 이 신조협려의 주요 테마이며, 그 중간중간 만나게 되는 사람들과 사건 과 사연들이 복잡하게 얽혀지며 이야기가 구성된다. 고묘 안에서 두사람은 사제의 연을 맺게 되는데 어느새 자신들도 모르게 서로에게 애정을 품게 되고, 옥녀심경을 빼앗으로 이막수가 쳐들어 오는등 여러 사건을 거치며 둘은 서로에게 없어서는 안될 생명보다 귀한 사람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하지만 이 둘의 사랑은 여러번의 위기를 겪게 되는데, 이는 양과의 소용녀의 기본 성정과 연관이 깊다.

먼저 양과의 성품을 살펴보자

양과는 태어나는 순간부터가 불행하였다. 양과의 성품은 그의 아버지였던 양강과 흡사한 면도 있는데다가 자존심이 강하고 규범에 얽매이지 않으며 자유분방하였다. 게다가 좋게 보면 총명한 것이고 황용처럼 삐뚫어지게 보면 약삭빠른 것이었기에 작품 내내 양과는 황용의 의심을 사고 견제를 받게 된다. 오로지 곽정 만이 양과를 처음부터 믿어주고 아껴준다. 양과는 이런 곽정에게 고마움과 실망의 감정이 번갈아 가며 품게 되는데. 양과가 고묘에 들어가기전 보다 나이를 더 먹은 상태였다면 곽정의 순후한 성품과 자신을 아끼는 마음이 절대 거짓됨이 없다는 것을 알았을 것이다. 

이와 같이 자기감정에 충실한 양과의 성품은 신조협려를 애정무협이라 부르게 하는 기본요소라고 할 수 있다. 그럼 다음 소용녀의 성품은 어떠할까

소용녀는 위에서 알아보았듯이 감정을 모르고 선녀처럼 살아왔다. 소용녀의 사매인 이막수는 억눌리는 감정을 다스리지 못하고 결국 대마두의 길을 걷게 되지만, 묘하게도 소용녀는 감정을 다스려 차가운 성품을 가지게 되었다. 본디 임조영이 고묘파에 남긴 규범인 남여의 정을 금할 뿐 아니라 오욕칠정을 모두 다스려야 한다는 것은 인간에게 있어 불가능한 것이나 다름 없었든데, 소용녀는 양과를 처음 만날 당시의 어린나이에도 그러한 다스림의 경지에 이르러 있었던 것이다.

양과와 소용녀의 사랑은 둘이 강호로 나오게 된 이후에 여러번의 위기를 겪게 되는데, 그간의 아픔과 괴로운 일들은 차마 말로 다하기 어려울 정도로 비참하고 잔인하엿다. 처음에는 전진교의 제자 윤지평에 의해 순결을 잃게 되는데 소용녀는 양과라 생각하고 반항하지도 아니 하였다. 그런데 이를 모르는 양과는 여전히 소용녀를 아가씨라 부르고...

이후 우여곡절 끝네 다시 재회하게 된 양과와 소용녀를 또다시 갈라 놓게 된 것은 세상의 규범이었다. 소용녀는 양과의 사부였고 '송대'에는 스승과 부모는 동일한 항렬이었기에 사람들이 보기에 둘의 사랑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던 것이다. 결국 소용녀는 다시한번 떠나게되고 이 떠남에 있어 소용녀의 가슴은 양과를 향한 사랑으로 마치 단장을 하는듯 아파했는데 이는 당시의 '예교" 가 만들어낸 결과라고 할 수 있다. 금기시 되는 사랑이었던 것이다.

황용이 말했다.
  "좋다. 네가 이미 내게 곧은 말ㅇ르 했으니 나도  이리저리  돌리지않겠다. 용아가씨는 이미 너의 사부가 되었으니 그렇다면  너의  존장이 되므로 남녀간의 사사로운 감정이 있어서는 안된다."

  이 법규에 대해서 양과는 소용녀처럼 전혀 모르는 것은  아니었지만 쉽게 굴복할 수가 없었다. 용아가씨가 자신에게 무공을 가르쳤다는 그 이유 하나만으로 왜 그의 부인이 될 수 없단 말인가 ?  왜 자신과  아가씨는 절대로 불륜의 관계가 없었다는 것을 곽백부조차도 믿으려  하지 않는 것일까 ?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가슴에서 노기가 솟구쳐올랐다. 그는 본래 하늘도 땅도 두려워하지 않는 열정이 넘치는  사람이다. 지금 억울한 일을 당하자 더욱 아무것도 안중에 두지 않고 큰소리로 말했다.

  "내가 당신들에게 무슨 일을 방해했단 말이오 ?  내가 또 누구를 해쳤단 말이오?  아가씨는 내게 무공을 가르친 적이 있지만 나는  그녀가 오직 나의 아내가 되기를 원해요. 여러분이 나를 천 번 만 번 칼로 벤다고 해도 나는 그녀에게 아내가 되어 달라고 할 것입니다."

  이 말이야말로 사방의 좌석에서 듣고 있던  사람들을  소스라치도록 놀라게 했다. 당시송나라 사람들은 지나칠 정도로 예법에 얽매여  있었다. 그런 그들이 어찌 이토록 마음대로 꺼리는 것 없이 해 대는  반역의 말을 일찌기 들은 적이 있었겠는가? 곽정은 일생 동안  사부를 가장 공경하고 존중해 온 터라 이 말을 듣자 노기가 치밀어올라 한 걸 나서서 손을 뻗어 그의 가슴을 움켜잡았다.


이외에도 수 없이 많은 우여곡절이 양과와 소용녀에게 다가 오는데, 둘의 서로를 사모하는 절절한 마음은 위기와 고난이 있을 수록 더욱 깊어 가게 된다. 마지막으로 둘을 갈라 놓게 되는 것은 무려 16년간의 긴 시간이었다.



소용녀가 종남산 전진궁 앞에서 9대고수에게 포위당해 치명적인 중상을 입고, 양과는 한쪽 팔을 잘리는 고통을 겪게 된다.

 "과아야, 내 이 사람으로  인해서 몸을 더럽혔으니 설령 상처가 다 낫 는다고 해도 오랫동안 너를 보살펴 줄 수가  없구나. 다만......,  다만 그는 목숨을 내걸고  나를 구해 주었으니 너는  더 이상 저 사람을 괴롭 히지 말아라. 이 모두는 내 팔자가 사납기 때문이다."

  윤지평은 소용녀가 하는 말을 듣고는 가슴이 칼로 도려 내는  듯이 아팠다. 일시의 욕망으로 인해 사리 판단이 흐려져 큰 일을 저질러 놓았으니, 자신은 소용녀를 하늘과 같이 받든다고 해도 그녀의 일생을  불행해져서 1백 번 죽어도 그 잘못을 속죄할 수 없었다. 윤지평이 돌연 큰소리로 외쳤다.

  "사부님, 네 분 사백 사숙, 제자가 큰 죄를 지었으니 여러분께서는 절대로 용아가씨와 양과를 괴롭히지 마십시오."

라고 말하면서 여러 도사들이 앞을 향해 세워 들고 있는 8,9자루의 장검을 향해 몸을 날리니, 몇자루의 검이 그의 몸을 꿰뚫어 그는 곧 죽고 말았다.  여러 도사들은 소용녀가  하는 말을 듣고 또한 윤지평이 죄를  인정하며 자살하는 것을  보고는 정말로 그가 전진의 대계율을 어기고  비겁한 수단을 이용해 소용녀를 욕보였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전진오자는 모두 계율을 엄하게 지키는  고사(高士)들인 까닭에 이번일의 잘못이 자신 들에게 있다는 것을 잘 알고는 크게 부끄러웠으나 어떤  말로 이러한 감정을 표현해야 할지 몰랐다.
  구처기는 네 사형제를 한번 쳐다보고는 소리쳤다.

  [검진(劍陣)을 풀어라!]

  양과는 여전히 오른손의 빈 소매로 소용녀의 허리를  끌어안아 그녀의 몸을 지탱해 주었다.

  "우리 그만 가요!"

  소용녀가 달콤하게 웃으며 나직이 말했다.

  "지금 네 곁에서 죽으니 마음이......, 마음이 매우 편하다." 
그러다가 갑자기 무엇인가 생각이 난 듯 말했다.

  "곽대협의 딸이 네  팔을 상하게 했으니 그녀가 너를  대할 면목이 없 을 것이다. 그럼 누가 너를 보살피지?"

  그녀는 이 일을 떠올리자마음이 더욱 난감해졌다.

  "가 외롭게, 홀로 아무도......, 돌봐 줄......"

  양과는 그녀의  목숨이 경각에 달린 것을  보자 더욱 고통스러워졌다. 그래서 생각에 잠겼다.
  '전에 이  종남산에서 그녀는  나에게 자신을 아내로  맞이하겠느냐고 물었었지. 그때 당황한 나머지 대답을 못해 그 후 얼마나 고통스럽고 후회스러운 나날들을 보냈던가. 이제  시간도 얼마 없으니 필히 내 마음을 알려야겠군.'
  양과는 갑자기 큰소리로 외쳤다.

  "무슨 놈의  스승과 제자와의 도리냐?  무슨 놈의 순수한  결백? 우린 모두 상관치않아! 모두 개 같은 소리야! 죽어도 좋고  살아도 좋아. 우리 두 사람은 조금도 외롭지  않고 조금도 불운하지 않아요. 지금 이 시각부터 당신은 나의  사부가 아니야, 나의 아가씨도 아니야, 바로 내 아내야!"

  소용녀는 기쁨에 넘쳐 그의 얼굴을 바라보며 나직이 말했다.

  "지금 진심으로 하는 소리지? 나를 기쁘게  해 주려고 일부러 하는 소리는 아니겠지?"
  "진심이지 않고요. 내가  팔이 잘렸는데도 당신은 나를 더욱 사랑했어요. 당신이 어떤 재앙을 만난다 해도 난 당신을 더욱 사랑할거예요."
  "그래, 세상에서 너와 나  두 사람이 서로를 위하지 않으면 누가 우리
를 사랑하겠어?"

  수백 명에 달하는 중양궁의 도사들은 두 사람의 이  같은 밀어를 듣게 되자 모두들 낭패한 표정을 지었다. 그들의 부드러운 속삭임이 계속되자 나이가 든 사람들은 당혹한  빛을 감추지 못했고, 젊은이들은 마음이 뒤숭숭해졌다. 서로 쳐다보며 얼굴이 붉어진 사람들이 허다했다. 청정산인 손불이가 소리쳤다.

  [너희들은 어서  중양궁을 떠나거라. 중양궁은  본시 청정한 곳이거늘
이곳에서 이처럼 예의에 벗어나는 언행을 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양과는 듣고도 못 들은 척 소용녀의 두 눈을 응시하며 말했다.

  [당시 중양선사와  고묘파 조사할머니가  부부로 결합을 했어야  하는건데. 무슨 놈의  예교 때문인지는 몰라도 결국  각자 한을 남기고 끝나 버렸지요. 오늘 우리 두 사람이 중양조사의 사당 앞에서 식을 올리고 부부가 되어 우리의 조사할머니의 한을 풀게 해 드려야겠어요.]

  그는 본래 왕중양에 대해 그리 호감을 갖고 있지 않았다. 그러나 고묘안에서 그가 남겨  놓은 유각을 수련하기 시작하면서 점점 탄복하게  되어 후에는 매우 존경하게 되었다. 때로는 은근히 자신이 바로 그의 전인인 것처럼 느끼기도 했다. 소용녀가 한숨을 쉬며 그윽하게 말했다.

  "과아야, 내게 이처럼 잘 대해 줘서 고마와!"

정화의 독에 중독된 양과와 내상을 치료하기 위해 운공중 곽부에 의해 치명상을 입은 소용녀는 서로를 상처를 안타까워 하지만 소용녀의 상처가 치료되기 어렵다는 것을 알고 양과는 자신의 독을 해독하려 하지 않는다.  황용이 단장초를 준비하여 양과에게 먹이려는데 양과가 소용녀가 없는 삶은 의미가 없다는 생각으로 이를 받아 들이지 않자 소용녀는 절벽에 검끝으로 두줄의 글씨를 새겨놓고 사라져 버린다.

"16년 뒤에 이곳에서 다시 만나요. 부부는 정이 깊으니 약속을 지키는 일을 잊지 마세요. 소용녀가 부군 양도령에게 부탁하오니 소중한 몸 부다 잘 보전하여 서로 만나도록 해요"

아 온갖 시련을 겪으며 깊어진 부부의 정이 이토록 아름다울 수가 있을까. 신조협려는 이와 같이 작품 내내 사랑을 이야기 하고 있다. 감히 일독을 권해드린다.

BEST 2, 다정검객무정검 (소이비도/비도탈명) / 고룡 작


다음으로 볼것이 바로 고룡선생이 지은 "다정검객 무정검" 이다. 사자비는 솔직히 말하면 이심환을 초류빈으로 바꾼 "비도탈명" 이라는 책으로 이 작품을 접하였다. 정확한 이유는 모르겠지만 아마도 저작권을 라이센싱하지 않고 번역 출판한 관계로 주인공 몇몇의 이름을 살짝 바꾸어 출간한 것이 아닌가 싶다.

 "무정(無情)과 유정(有情)은 본디 종이 한 장 차이인 것, 정리하려면 더욱 엉키고 끊으려면 더욱 새로워지는 것...유정인지 무정인지 어느 누가 뚜렷한 정의(定義)를 내릴 수 있겠는가...어느 누가...어느 누가....."

이심환은 사랑하는 여인을 용소천의 거짓 연기에 속아 양보하게 되고 그 아픔을 견디지 못해 십여년간 방황을 하다 다시 돌아 오게 되는데...

이 작품 역시 신조협려와 더불어 애정무협으로 손꼽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대개 무협소설은 신공비급 쟁탈전이거나 역사무협, 원수를 갚는 내용 등이 주를 이루는데 반해 이 작품은 치정이 얽힌 가슴저린 이야기가 주 테마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의협심 가득한 주인공은 여전하지만...특이한것은 고룡의 이 작품은 성장하는 내용이 없다는 것. 그로 인한 대리만족은 느낄 수 없다. 주인공의 무공수준은 사람들이 주인공의 강함에 대해 알지만 자존심 강한 일부 무인들은 완전히 승복하지 않을 정도로 다 드러나지 않은 채 시작할뿐이지 실제로는 처음부터 끝까지 천하제일이다. 그 누구도 그 어떤 상황에서도 주인공이 발하는 비도를 피하는 자는 단한명도 없다는 것. 적과 대결하는 장면이 나오면 언제 비도가 발출되는지를 관심에 두고 보는 것도 이 책을 보는 쏠쏠한 재미중 하나가 되겠다.

BEST 3, 운해옥궁연 / 양우생 작



바로 국내에 승천문으로 소개되었던 작품이다. 금세유, 여승남, 곡지화 의 삼각라인을 그린 작품이다.

독특한 주인공 인 금세유는 당대 제일의 무공을 지닌 자로 나오지만 세력을 갖지 않고 홀로 독불장군하며 지내는데 선녀같이 고으며 같이 있으면 편안한 이상적인 여인 곡지화를 내심 연모하게 된다. 그러던 어느날 당대의 으뜸가는 호걸로 거침없이 강호를 종횡하는 금세유이건만 여승남이라는 악독한 마녀를 만나 계속해서 쉬지도 않고 곤경에 처하게 된다. 풍파를 몰고 다니는 여승남의 그 악독한 심보는 책을 보는 내내 상당히 얺짢은 생각이 들게 되지만 전대 대마두의 비급을 탈취하기 위해 들어간 섬에서 금세유와 러브라인이 슬슬 발동하기 시작하게 된다. 그러나 금세유는 여승남을 미워하는 듯 하면서도 마음이 기울어져 가고 있다는 것을 인정하지 못한다...결국 마지막에 이르러 여승남은 당대 제일의 고수 당효란(양우생의전작 강호삼여협의주인공)와 대결을 펼치게 되는데, 자존심이 천하제일인 여승남은 끝내 부상을 입은 상태에서 사파 최후의 마공 "천하해제대법"를 펼 치게 된다.

이 천마해체대법은 '혀끝'을 깨물어 피를 내면 일시적으로 잠재력이 격발되어 평소보다 몇배의 위력을 발휘하게 되는데,단  그 후유증이 심각하여 자칫 잘못하면 폐인이 되기 쉽상이고 못해도 꽤 오랜 정양을 필요로 하게 되는 지독한 사공이다. 그러나 당대 제일의 고수 당효란은 이렇게 잠력까지 폭발시킨 여승남 마저도 상대해내는 깊이를 가늠하기 힘든 고수였다. 여승남은 다시 다시 한번 혀끝을 깨물고 마는데...이는 점점 죽음으로 향해가는 길임에 틀림 없다.  여승남은 금세유를 사랑하는 것을 깨닫고 나서야 지난날을 후회 하게 되고, 금세유 또한 여승남에게 조금씩 끌리는 것을 느끼지만 종종 보게 되는 여승남의 잔혹한 손속에 멈칫멈칫하고는 한다. 게다가 그에게는 곡지화와의 애틋한 만남이 있었으니...이러한 복잡한 심경속에서 여승남은 최후의 잠력까지 모두 사용하고야 마는데...

마치며...

공료롭게도 이 베스트로 꼽은 작품3가지는 애정무협답게 애끓는 사랑이야기를 담고 있는 공통점이 있는대신 그만큼 스토리 내내 통쾌하고 시원시원한 느낌보다는 남.여 주인공 사이의 얽히고 설킨 사연으로 답답한 느낌마저 주게 됩니다.. 그러나 책에서 손을 놓는 순간 가슴을 찡하게 하는 그 느낌은 그 어떤 무협소설보다 강한 여운을 남기며, 한번 일독을 마치고 나면 절대 후회하지 않을 명작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당대의 호걸로 천하를 누비는 남아대장부와 고혹적인 여인의 러브스토리를 보고 싶다면 위 세작품을 강력하게 추천드리면서 글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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